Comparing ACT meditation and Samatha-vipasyanā practice of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윤 선영  Sun-Young Yun1*

Abstract

The ACT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is a treatment that promotes psychological flexibility by applying Mindfulness to the process of acceptance and behavioral change. The Awaking of faith in Mahayana emphasizes that the Great Buddhist spirit should develop a Mahayana movement for the benefit of the people. In other words that is seeking the right of Il-sim (one whole mind) as it is a great victory movement that leads to the public world by combining the self-benefits and others-benefits and explains the way of the concrete practice through amatha-vipayanā. The two theories are meditation or practice in the Buddhist Sati concept, and the human mind is the subject, and the ultimate purpose is to heal the pain of the mind caused by human agony. Therefore, despite the gaps( East, West, Time, and Space), there are conceptually a lot of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and limitations. In this paper, we will seek to find a fusion point for the purpose of healing the hearts of the East and the West by comparing the meaning of meditation in the practice of the Buddhist practice and the ACT that is in contact with the truth of Buddhism.

Keyword



Ⅰ. 머리말

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최근 명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심리치료에 활용한 연구들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중 서양의 인지 행동 심리학이 불교의 위빠사나 명상의 핵심요소인 마인드풀니스 명상(Mindfulness : 이하 마인드풀니스로 용어 통일)을 심리치료에 가장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다. 특히, 수용전념치료(ACT)는 수용전념치료의 여섯 가지 치료기제 즉, 수용, 인지적 탈 융합, 맥락적 자기, 현재에 머무르기, 가치, 전념적 행동에 마인드풀니스를 적용하여, 내담자의 심리적 유연성을 증가시켜 내담자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사회에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하 기신론으로 용어 통일)은 인도에서 당시 발전하던 양대 불교사상, 중관(中觀)과 유식(唯識) 사상을 지양하고 화합시켜 ‘진속일여(眞俗一如)’의 사상을 담은 대승불교의 가장 위대하며 독보적인 논서이다. 기신론에서는 심원(心源)을 깨달은 사람은 중생 이익을 위해 대승운동을 전개해야 함을 강조한다. 즉, 대승기신(大乘基信)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병행시켜 공공세계로 나아가는 대승운동으로 일심(一心)의 도리를 구하고 있다. 특히 일심에 근거한 마음의 본질과 작용을 상세하게 펼쳐 놓으며, 그 위에 깨달음의 마음을 현상계에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행체계를 제시하고 있는 일종의 수행지침서이다.

기신론의 지관수행과 수용전념치료의 명상은 불교의 사띠(sati)개념에서 발전된 명상이자 수행으로서 상당히 많은 부분의 이론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차이점 또한 존재한다. 즉, 불교에서의 명상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서 수행 적 삶 자체가 목적이지만, 수용전념치료에서는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명상을 활용한다. 또한, 불교에서의 개인은 명상을 통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것을 알아차려야 할 대상으로서 간주한다. 반면, 수용전념치료에서의 개인은 관찰자의 입장으로 자기를 감시하며 자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래서 서양의 명상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개인에 그 목표로 두고, 개인의 우울, 불안, 공포, 통증 등 마음과 몸의 장애를 완화하고 제거하는 목적이 있다. 그래서 외부세계에 잘 적응하고,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건강한 사회 구성원의 양산이 명상의 궁극 목적이다.

그러나 불교의 수행과 서양 명상심리치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서양명상치료는 불교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문화적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누락하는 데 있다, 대신 그 자리에 서양의 정신치료와 명상효과와 관련된 뇌 과학실험과 연구들로 대체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서양 심리치료에 적용된 명상은 지나치게 치료적 관점에 치우쳐 있고 불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깊은 가르침이 생략되거나 왜곡될 소지가 존재한다. 반면 지금의 불교는 불법의 대중화를 위해서 다양한 근기를 통섭할 수 있는 쉽고 행하기 편한 수행지도법과 수행법을 대중에게 제시해야 할 명제를 안고 있다. 즉, 현대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불교 이론을 근간으로 하는 구체적인 명상 프로그램이 적극 요청되어 지고 있는 시점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불교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마음의 깨달음을 밝히는 대승기신론의 지관 수행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실행하여 효과를 입증하고 있는 수용전념치료의 여섯 가지 치료 기제의 명상을 비교 분석하여 양자간의 통섭(統攝)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대승기신론의 지관 수행과 수용전념치료의 여섯 가지 핵심치료기능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두 개념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둘째, 대승기신론의 지관 수행과 수용전념치료의 비교를 통해 각자의 한계점을 밝혀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셋째, 두 이론의 비교 분석을 기반으로 동, 서양 명상의 융합 점을 모색해보고 새로운 명상프로그램의 단초(端初)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2. 이론적 배경 및 선행연구

2010년 미국의 경우, 심리치료에서 40% 이상이 명상을 환자치료에 사용하고 있고, 명상 관련 논문이 일 년에 천 편 이상 나오고 있다고 한다. 약 700여 개소의 의료현장에서 명상치료가 벌어지고 있으며, 명상을 기반으로 한 심리치료를 연구와 임상에 활발히 활용하면서 명상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하게 되었다(권경임,2014). 이에 따라 서양에서는 멘탈 케어(mental care), 명상, 요가 등이 지속적으로 성장되면서 새로운 보건의료와 비즈니스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명상이 치유에 효과를 미치는 질병으로 고혈압, 불면증, 우울증, 불안신경증, 공황장애, 강박증, 스트레스 등과 같은 심리적 장애와 만성 통증, 심장병, 소화기 병, 피부병, 암 등과 같은 신체적 질병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미국국립대체의학센터(NCCAM, National Center for Complementary & Alternative Medicine).

이러한 변화는 90년대 이후부터 위빠사나 명상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MIT대학의 Kabat-Zinn(1990)이 만성 통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Mindfulness에 근거한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MBSR :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을 진행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MBSR에서는 위빠사나 명상의 핵심요소인 마인드풀니스를 임상 환자들에게 훈련시켜 만성적인통증의 조절뿐 아니라 불안장애, 우울증, 공황장애와 같은 정서적, 행동적 장애의 치료에도 효과를 나타냈다.

이처럼 불교적 명상이론을 도입한 명상치료 프로그램은 특히,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명상 기반 상담프로그램들이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얻어감에 따라 우리에게 역수입되어 국내에서도 서양 명상을 기반으로 하는 상담프로그램들이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프로그램으로는 마음 챙김에 기반 한 스트레스 감소(MBSR: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마음 챙김에 기반 한 인지치료(MBCT: 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변증법적 행동치료(DBT: Dialectical Behavior Therapy), 수용전념치료(ACT : Acceptance Commitment Therapy), 마음 챙김 자기연민(MSC : Mindful Self-Compassion) 등이 있고, 마음 챙김에 기반 한 재발 방지(MBRP : Mindfulness-Based Release Prevention), 연민심 초점치료(CFT : Compassion Focused Training), 연민심 배양훈련(CCT : Compassion Cultivation Training), 연민적 마음훈련(CMT : Compassion Mind Training), 정서중심치료(EFT ; Emotion Focused Therapy) 등은 아직 국내에 잘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새롭게 조명되는 명상 프로그램이다(서광스님, 2018).

이필원 박성식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에서 명상 프로그램 관련 논문을 검색하여 학술적 논문 90편을 추출하여 동향을 분석하고 종적으로 60편의 논문을 추출하였다. 1편은 기독교 명상을 주제로, 9편의 논문은 요가나 국선도의 명상법을 활용한 프로그램, 나머지 50편이 위빠사나 계열의 마인드풀니스를 사용한 명상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한다(이필원, 박성식, 2013). 이같이 서양의 심리 치료적 명상이 남방불교의 위빠사나를 응용하여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들을 계발할 수 있는 것은 남방불교의 명상이 종파주의를 지양하고 시대적 언어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이필원, 박성식, 2013).

마인드풀니스를 주제로 한 기존의 연구들은 마인드풀니스의 수행의 의미와 역할에 관한 연구와 마인드풀니스의 활용 및 효과검증에 관한 연구로 나눌 수 있다. 마인드풀니스의 수행 상 의미와 역할에 관한 연구는 주로 초기 불교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주로 초기불교 내에서도 초기 경전 및 주석서 등을 통해 마인드풀니스의 초기 경전의 용어인 사띠(sati)의 의미와 번역어, 사띠와 삼빠잔냐(sampajañña)의 관계, 그리고 사마타(samatha, 止) 혹은 사마디(samādhi, 定)와 위빠사나(vipassana, 觀) 등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불교적 관점에서 본 수용전념치료(ACT :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py)와 관계된 논문으로는 “불교와 수용전념치료에 대한 재고찰”(윤희조, 2015), “초기불교의 자애 명상과 수용전념치료”(추인혜, 2017), “위빠사나 수행과 수용전념치료의 비교연구”(이주미, 2011), “불교 명상의 심리치료에의 응용에 대한 연구: 최근 심리치료와 전통적 불교 명상에서 마음 챙김의 위상을 중심으로”(김재성, 2011), “마음 챙김을 근거 한 심리치료”(박성현, 2007),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본 수용전념치료”(추인혜, 임승택, 2016)등이 있다. 이후 “수용-전념 치료프로그램이 임상 간호사의 업무 스트레스와 심리적 안정감에 미치는 효과”(문임숙, 2010), “만성 통증 환자를 위한 마음 챙김 수용 증진 프로그램 개발” 등은 ACT의 효과를 분석한 논문으로써 본 논문과 같이 불교적 관점에서의 ACT와는 그 맥락을 달리한다고 보여진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는 수용전념치료(ACT)(김지연 외5인, 2012) 논문 또한 존재한다.

이상으로 지금까지의 선행 연구에서는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본 서양 심리치료의 비교연구는 많지 않으며, 대승불교의 정신과 수용전념치료(ACT : 이하 ACT로 용어 통일)와의 비교연구는 극히 드문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대승기신론의 지관 수행과 ACT의 비교 분석 연구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Ⅱ. ACT의 명상 (마인드풀니스)

1. ACT의 구성

ACT의 목표는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bility)을 기르는 것이다. ACT에서 심리적 유연성이란 선택하는 가치에 따라 행동이 변화하고 지속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현재에 완전히 접촉하는 것을 말한다(Hayes 외 4인,2004). ACT는 크게 여섯 가지 핵심적인 치료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수용(acceptance), 인지적 탈 융합(cognitive defusion), 맥락으로서의 자기(self as context), 현재에 머무르기(being present), 가치(value), 전념 행동(committed action)등이 그것이다(Twohig & Hayes, 2008). 이 치료적 과정은 순차적, 선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되어 있으면서 유동적으로 이루어진다(김수인, 2011). 즉, 전체적으로 보면 각각의 기제는 다른 기제를 지지하며, 각 기제에서는 마인드풀니스의 기법이 적절히 사용되며 궁극적인 목적인 심리적 유연성을 최종 목표로 한다

이 ACT의 여섯 가지 기제는 크게 두 가지 과정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마인드풀니스와 수용과정이고, 두 번째는 전념과 행동 변화과정이다. 마인드풀니스와 수용과정에서는 수용, 인지적 탈 융합, 현재와 접촉하기, 맥락으로서의 자기라는 치유 기제를 통해 수용과 알아차림을 기술한다. 또한, 전념과 행동 변화과정에서는 현재와 접촉하기, 맥락으로서의 자기, 가치, 전념 적 행동이라는 치유 기제를 통해 전념과 행동 변화과정을 기술한다(Twohig & Hayes, 2008). 현재와 접촉하기와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바로 지금(the now)을 포함하기 때문에 두 집단 모두에 포함된다(Luoma 외 3인. 최영희 외 3인 역, 2014), 즉, ACT에서 마인드풀니스는 여섯 가지 치유 기제를 통하여 심리적 유연성을 획득하여, 궁극적으로 행동을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도록 돕는다.

<표1. ACT에서의 6가지 핵심 치료 모형과 병리 모형 표 >는 ACT가 심리적 유연성의 증대를 위해 여섯 가지 치유 기제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의 표에서 점선 화살표로 표시된 네 가지 과정인 수용, 탈 융합, 현재와 접촉하기,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ACT에서 수용과 알아차림의 과정을 표시하고, 실선 화살표로 표시된 네 가지 과정인 현재와 접촉하기, 맥락으로서의 자기, 가치, 전념 행동은 ACT의 전념과 행동 변화 기술을 나타낸다(Hayes 외5인, 2013).

이러한 수용과 전념이라는 두 측면이 기능적으로 작동하는지, 그렇지 못한지에 따라서 심리적 경직성을 야기하는 ⒜ 병리 모델이 되기도 하고, 심리적 유연성을 발생하는 ⒝ 치유 모델이 되기도 한다. 수용과 전념의 두 측면의 가운데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자아’이다. 자아가 맥락적으로 기능하는지, 언어적 개념화에 집착하는지에 따라서 전체적으로 심리적인 유연성이라는 목표로 나아가기도 하고, 아니면 심리적인 경직성이라는 고통의 정상성이라는 현실에 머물기도 한다(윤희조, 2015).

이를 다시 육각형의 그림으로 나타내면 <그림1>과 같다. ACT의 여섯 가지 치료과정은 <그림1>의 육각형의 외부와 내부의 선의 연결과 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상호적인 과정으로서 궁극적으로 육각형 정 중앙에 위치하는 내담자의 심리적 유연성을 강화시켜 보다 외부세계와 융통성 있게 소통하고 적응할 수 있게 한다

즉, 1) 심리적 수용 기술 확립 2) 인지적 탈 융합 기술 확립 3) 맥락으로서의 자기(self-as-context)와 개념화된 자기(conceptualized self)의 구별 4) 현재 접촉하기와 과정으로서의 자기(self-as-process) 기술 확립하기 5) 선택과 합리화된 행동 구별하기, 가치 명료화하기, 목표와 행동에서 가치 식별하기 6) 전념행동의 지속과 가치 선택으로 이어지는 행동변화전략 가르치기 등 이 모든 일련의 치료 기제는 심리적으로 유연하고 효과적인 행동 패턴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통합되고,(고진하 옮김. 2009.) 각 단계의 치료기제에서는 마인드풀니스로 나의 마음을 알아차려 하나의 일관된 전체로 결합하여 심리적 유연성을 확보한다

실제 프로그램 적용 시에는 가치가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지 못한 청소년에게는 실현할 수 있는 가치를 먼저 정립하는 단계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수용과 인지적 탈 융합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내담자의 경우에는 수용의 단계에서 심리치료를 실행할 수 있다. 각 단계에서는 마인드풀니스 명상이 매 과정마다 효과적으로 개입이 되며, 내담자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스스로를 변화시켜 마음의 치유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표 1. ACT에서의 6가지 핵심 치료 모형과 병리 모형표http://dam.zipot.com:8080/sites/mpca/images/N0290180204_image/Table_mpca_18_02_04_T1.jpg

2. ACT의 구성요소

(1) 수용

수용은 일반적으로 고통은 제거하려고 애쓸 때 오히려 더 증폭되고, 고통 속으로 더 휘말리게 되며, 더 외상적인 것으로 변환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문현미·민명배 옮김, 2010). ACT에서는 고통을 통제나 제거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마인드풀니스와 수용을 통해 내면의 관점을 변화시킴으로써 고통을 기꺼이 수용할 것을 강조한다. ACT에서의 수용은 단지 수동적으로 인내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을 판단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기꺼이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비 판단적인 태도를 지니고 자신의 생각, 감정, 신체적 감각 등의 경험을 능동적으로 껴안아 있는 그대로를 기꺼이 경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삶의 경험에서 오는 고통을 통제하고 회피하는 ‘창조적 절망감(creative hopelessness)’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고통을 증폭시켜 고통을 더욱 깊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ACT에서의 수용은 가치에 기반을 둔 적극적인 행동 방안을 의미한다

헤이즈는 이를 우리가 모래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걷고 뛰고 점프하며 발버둥 치기보다는 힘을 빼고 신체를 표면에 최대한 접촉해서 활짝 펴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 유리함에 비유하였다. 발버둥 칠 때 들여 올려 진 발은 반대편 발에 두 배의 무게를 전가시켜서 우리 몸을 모래 늪에 더 파묻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문현미·민병배 옮김, 2010). 내 앞에 놓인 고통을 회피하고 거부하기 보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있는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더 넓은 자아에로의 확장이 시작되고, 그 세계는 고통과 공존하는 건강한 자아로의 진입을 뜻한다.

(2) 인지적 탈 융합

인지적 탈 융합(cognitive defusion) 기법은 생각이나 경험들에 대한 형태나 빈도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관련된 맥락을 바꿈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기능을 변경하고자 한다(Hayes 외 5인, 2006). 그러기 위해서 인지적 탈 융합 기법은 생각, 감정, 기억을 언어적 개념으로 추상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체험하고 인식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인지적 융합에 빠져 있을 때는 자신의 생각이 지속적인 인지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언어적 과정을 객관화하고 중립화해야 한다. 즉, 인지적 탈 융합은 인지 치료처럼 왜곡된 인지를 교정하거나, 행동치료처럼 문제 행동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자신의 평가, 생각, 기억 등을 적어 내려감으로써 융합된 자신의 인식을 분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방법이 바로 마인드플니스가 적용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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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ACT의 여섯 가지 핵심 치료과정(Hayes, Strosahl, & Wilson, 2012)

헤이즈는 ‘버스에 탄 승객들(인경스님·김수인 역, 2011)’에 비유하여 운전자가 목적지(가치)로 향하는 믿음이 확고하면, 시끄러운 승객들(방해가 되는 생각, 감정, 기억 등)이 버스 자체가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운전자는 자신을 버스의 승객과 분리하여 스스로 핸들을 조정할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지적 탈 융합의 구체적인 적용 기법은 내담자들에게 자신들 바깥에 있는 생각을 일어나게 하고 위치시키는 생각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인데, 이는 내담자들을 뒤로 물러서게 하고, 생각으로부터 분리시켜, 생각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게 하는 것이다. 즉 언어를 의미로부터 분리시켜 그것은 단지 단어 혹은 소리에 불과한 것이지 진정한 내가 아니며 나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기법이 탈 융합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확대하면 나의 감정은 감정일 뿐이지 감정이 내가 아님을 인지하게 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에서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된다.

(3) 맥락으로서의 자기

맥락으로서의 자기(self as context)는 지금, 여기의 경험하는 나를 ‘조망하는 자기’, ‘관찰하는 자기’로 인지한다. ACT에서는 관점 수용(perspective taking)이 자기와 타인에 대한 의식에 있어서 기초가 된다고 보는데, 즉 행동적 관점에서는 환경과 함께 반복되는 상호작용 속에서 자기(self as content)와의 융합이 일어나고 자신의 패턴화 된 언어적 규칙에 의해 스스로의 행동을 제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맥락으로서의 자기(self as context) 관점은 지금, 여기에 접촉한 자신을 인지하고 보다 탄력적이고 융통성 있는 객관적인 자아의 확립을 뜻한다.

이는 우리의 관점과 서술이 기술(description) 혹은 평가(evaluation)(인경스님 · 김수인 역. 2011)에 따라 달라짐을 볼 수 있다. 우리의 관점이 평가에 기초하면 보다 자신과 융합된 개념적 자기에 머물게 되고, 있는 그대로 기술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게 되면 보다 더 객관적 거리에서 상황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ACT 관점에서 자기는 개념으로서의 자기, 과정으로서의 자기,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말한다(Stoddard & Niloofar. 손정락 역, 2016). 개념으로서의 자기 혹은 개념화된 자기는 우리의 기질, 가치, 취향, 습관, 장점, 단점, 그리고 다른 개인적 특징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개념화된 자기를 말한다. 과정으로서의 자기는 내적인 경험을 바라보고 그것들이 발생하는 대로 알아차리는 것과 관련되며,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관찰 자기라고도 하는데 어떤 위치나 관점에서 자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자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개념으로서의 자기와 과정으로서의 자기를 포괄하는 자각의 위치로 들어간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 위치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앎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보면, “나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한다면 개념으로서의 자기이다. 내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과정으로서의 자기이고, 그 생각을 알아차리고 있는 누군가(나 자신)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말한다. 즉,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던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내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맥락으로서의 자기인 것이다.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자기개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을 관찰 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이다(Joseph V 외 3인. 인경스님 · 김수인 역, 2011).

(4) 현재에 존재하기

현재에 존재하기(being present)는 언어로 인해서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체험을 알아차리며 현재에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권석만, 2012). 내담자는 과거에 대한 우울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지금, 여기의 현재에 머물지 못한 경우가 많다. ACT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벌어지는 상황은 현재에 접촉함으로써 발생하며 이런 자각을 통해서 과거와 미래의 집착을 벗어나 삶에 대한 여유로움을 갖게 되는 것을 주장한다. 여기에 마인드풀니스를 적용하여 현재를 온전하게 경험하고 현재에서 의미 있는 가치를 탐색해 활동하기를 제시한다. 이는 내담자들이 과거의 불만과 미래의 불안에 빠지기 보다는, 그 순간의 경험에 주의를 기울여 보다 유연한 자신과 자신의 가치에 부합되는 실천을 궁극의 목적으로 한다.

(5) 가치와 전념 행동

ACT에서 가치(value)란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으로서 가치 있는 행동 그 자체에 몰입하는 과정이며, 역동적이고 진화하는 행동의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ACT에서 가치는 윤리나 도덕과 같은 개념적 정의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 직접 관여되는 것으로서 어두운 동굴에서 밝은 밖으로 나가게 인도해주는 저마다의 빛과 같은 것이다. 즉, 삶의 여정 속에서 도달해야만 하는 최종 목표물이 아니라 각 개인이 끊임없이 노력하며 알아차려야 인식될 수 있는 과정이다. 이런 ACT의 가치는 사회적으로 요구되거나 옳고 그른 것과 관계없이 자신의 삶에서 매 순간 행동을 어떠한 방향으로 하고자 하는지는 온전한 자신만의 선택으로 정의한다(이선영 외 3인, 2009), 그래서 ACT에서 가치는 타인의 인정과는 관계가 없으며(이선영, 2017), 지금 이 순간의 행동을 선택하는 방향으로써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ACT에서는 이런 삶의 질과 관련되어 자신이 보다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의 방향을 명료화하도록 돕는다. 가치가 명료해지면, 그에 따른 구체적인 목표와 행동들을 정할 수 있어서, 불가피한 고통과 심리적 장애를 직면할 때에도 더 접근해갈 수 있는 용기를 내게 될 수 있다

Ⅲ.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지관 수행

1. 대승기신론의 구성

대승기신론은 크게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으로 나누어진다. 정종분 내에서 인연분(因緣分)-저술 동기, 입의분(立義分)-핵심주장, 해석분(解釋分), 수행신심분(修行身心分)-수행과 신심, 권수이익분(權修利益分)-수행의 공능(功能) 등으로 나누어 설명된다. 대승기신론은 말 그대로 큰 대승 보살의 신심을 일으키는 논서(論書)로써 후대인들에 붓다의 정신을 밝히고 유지하기 위해 정리한 논(論)이다.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 사신(四信), 오행(五行)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밝혀 마음의 본래 자리인 일심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무상하여 각양각색의 형태로 현상계에 투영되는 나의 마음을 밝혀,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대승기신론의 존재 의의라고 할 수 있다.

대승기신론의 지관 수행은 오행 중 하나로 해석분의 분별발취도상과 수행신심분(修行心身分)에 나와 있으며, 특히 대승기신론소와 별기의 지관 수행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수행신심분에서 설명되는 수행의 방법으로는 오행문[五行門 : 施門, 戒門, 忍門, 進門, 止觀門]이며 분별발취도상의 삼종발심[三種發心 : 信成就發心, 解行發心, 證發心]중에서 해행발심을 일으킨 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이 육바라밀로 제시되는 과정에서 선정바라밀과 지혜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즉, 수행심신분 편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고 그 대상은 부정취(不定聚) 중생이다. 부정취 중생은 “훈습과 선근력이 있으므로 까르마의 과보를 믿고, 10선을 잘 일으키며, 생사의 괴로움을 싫어하고, 무상의 보디를 욕구하며, 많은 붓다와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찬승, 공양하고 신심을 수행한다(이평래, 2014).”라고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의 부분에서 서술하였다. 즉, 부정취(不定聚) 중생을 대상으로 네 가지의 믿음(四信)에 다섯 가지의 수행(五行)을 연결시켜야 그 믿음 자체가 완전해지며, 믿음만 있고 구체적인 실천 행동이 따르지 못하면 신심이 성숙 될 수 없는 사상누각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원효는 새의 두 날개와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하며 지와 관의 두 수행은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였고 그래야지만 완성되며 이런 지와 관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곧 보리의 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 것이다.

1) 아버지의 알코올 사용장애

엽서가 기억하는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사용장애를 가졌고, 그로 인해 어머니에게 폭력적이며 가정은 평화롭지 않았다. 남자 어린 아이들은 아버지와의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이 자아성립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롤 모델로 생각하며 성장하지만 엽서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렇지 않았다. 어린 엽서에게 알코올 사용장애를 가진 아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이 잘 안 나요 잠깐 잠깐 떠오르는 기억이 있기는 한데 그것도 선명하지 않아요. 한 가지 선명한 기억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들어오셔서 밥상을 들어 엎고,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 무서워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어요. 조금 조용해 진거 같아서 담요 밖을 보니까 술병이 깨져 있구 방이 어지럽혀 있었어요. (5회기)

(1) 지 수행

지관 수행을 통해 일체중생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진여평등성(眞如平等性)을 자각하게 됨으로써 일체의 차별을 벗어나는 것이 해행(解行) 수행의 핵심이고 그 구체적 수행방안이 곧 육바라밀(六波羅密)이다. 즉, 지 수행을 통하여 심진여문(心眞如門)에 의지하여 일심으로 돌아가고, 관 수행을 통해 심생멸문(心生滅門)에 의지하여 일심으로 돌아가 대승의 믿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따라서지관문을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지(止)는 일체의 경계 상을 멈추어 사마타관에 수순(隨順)하는 의미이며, 관(觀)이라는 것은 인연 생멸상을 분별하는 것을 말하며 위빠사나관에 수순하는 의미이다(이평래, 2014).

먼저, 기신론에서 지(止)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첫째, 고요한 곳에 머물며[住於靜處], 둘째, 몸을 단정히 하여 앉아 몸을 준비하고[端坐], 셋째, 뜻을 바르게 하여 마음을 준비해야 함[正意]을 제시하고 있다( 이평래, 2014). 주어정처(住於靜處)는 환경적인 조건으로 지(止)수행 일체의 경계 상을 멈추는 것이므로 외부의 경계로부터 간섭받는 장소로부터 가능한 멀리 소음이 적은 고요한 장소를 찾아서 그곳에 머무르면서 수행에 전념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식(氣息)에도 의하지 말라. 형색에도 의하지 말라. 공(空)에 대해서도 의지하지 말라. 지수화풍에 의하지도 말라. 그리고 견문각지에도 의하지 말라. 일체의 모든 생각에 대해 그 염을 따라 모두 제거하고 또한 제거하였다는 생각까지도 버려라(이평래, 2014).

호흡에 의지하지도 말며 형색이나 그 비어 있음에도 의지하지 말고, 육근(六根)으로 보고 듣는 감각에 의지하지도 말며, 모든 망상을 념(念)에 따라 제거하고 망상을 제거하였다는 것마저 없애라는 의미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요함으로 흙탕물의 먼지를 가라앉히듯 육체를 가만히 오래 안정시키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앉아 있는 것이다. 지(止)수행에 있어 기신론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방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외적 대상을 추구하지 마라[不依].

둘째, 일체의 념을 제거하라[一切妄念 除去].

셋째, 일체 법은 본래 무상임을 알아라[一切法 本來無相].

넷째, 마음이 바깥으로 향할 때 정념에 머물러라[若心馳散 住於正念].

다섯째, 정념은 오직 마음뿐이다[是正念者 當知唯心].

여섯째, 행위를 할 때 늘 방편을 생각하고 관찰하라[有所施作 於一切時 常念方便 隨順觀察](최건업, 2014).

특히 기신론에서 정념(正念)이란 일체는 유심(唯心)이며 외부 경계가 없음을 아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삼계유심(三界唯心)이란 삼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법은 오직 한마음에서 나온 것을 의미한다. 삼계를 체험하고 ‘나’와 연계된 우주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모든 탐욕으로 지은 업장을 소멸하여 욕계(欲界)에서 해탈해야 한다. 욕계를 해탈하면 색계에 들어가게 되는 데, 색계(色界)란 육신이 일으키는 장애를 받는 세계이다. 이 장애를 소멸하면 보통 우리들의 의식이 느낄 수 없는 무의식계에 들게 되고, 무색계에서 나의 금생, 전생, 후생을 꿰뚫는 지혜를 성취하여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고, ‘내’ 몸을 담고 있는 이 우주, 즉 삼계가 오로지 ‘내’ 마음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본래부터 이 마음에 무한한 능력이 갖추어져 있음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되고, 깨달음을 통해 그 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게 된다.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과 몸이 일여(一如)가 되고 통일될 수 있도록 조석으로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계환, 2012).

이와 같은 지(止)수행을 닦아나가는 수행 방법을 원효는 기신론소에서 유가사지론 「보살지」에 나오는 구종심주(九種心住)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내주(內住)란 밖에 있는 일체의 반연하는 바, 경계로부터 그 마음을 거두어 단속하여 안에다 매어 두어 밖으로 산란하지 않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등주(燈住)란 처음으로 얽매인 마음은 그 심성이 거칠게 움직이는 것이어서 아직 똑 같이 두루 머무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에 곧 이것이 반연하는 경계에 대하여 상속방편과 정정방편으로 이를 꺾어 미세하게 하여 두루 거두어 들여서 머무르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안주(安住)란 만약 이 마음이 이처럼 내주 등주 하였으나 내주 등주하는 마음을 놓쳐 밖으로 산란하기 때문에 또 다시 거두어 들여서 단속하여 내경에 안치하는 것이다.

넷째, 근주(近住)란 저가 먼저 응당 이와 같이 친근하게 머무를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니, 이러한 생각에 의하여 자주 뜻을 일으켜 그 마음을 안으로 머무르게 하여 이 마음이 멀리 밖에 머무르지 않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다섯째, 조순(調馴)이란 갖가지 상이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니 소위 색성향미촉의 오진과 탐진치의 삼독과 남녀 등의 상이다. 그러므로 저가 먼저 응당 저 모든 상들을 근심거리의 생각으로 여겨야 할 것이며 이러한 생각에 의하여 저 모든 상들에 대하여 그 마음을 꺾어 버려서 흐트러지지 않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여섯째, 적정(寂靜)이란 갖가지 수번뇌가 있어 마음을 요동케 하기 때문에 응당 그러한 여러 가지 법들을 근심거리로 여겨 증상력에 의하여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일곱 번째, 최극적정(最極寂靜)이란 위의 적정의 마음을 놓침으로 해서 두 가지인 나쁜 심사와 수번뇌가 잠시 현행할 때에 곳에 따라서 일어나지만, 차마 받지 아니하고 곧바로 토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덟 번째, 전주일취(傳住一趣)란 가행이 있고 공용이 있어서 부족함이 없고 간격이 없어 삼마지가 상속하여 머무름을 말하는 것이다.

아홉 번째, 등지(等持)란 자주 닦고 자주 익힌 수많은 수행의 습관을 인으로 삼기 때문에 가행도 없고 공용도 없게 되어 자연히 도에 들어감을 말하는 것이다(은정희, 1990).

등지의 마음으로 진여의 상에 머무르면 진여삼매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기신론소에서는 지관 수행에서 사마타를 얻으면 네 가지 닦아야 할 관행 즉, 정사택(正思擇), 최극사택(最極思擇), 주변심사(周邊尋思), 주변사찰(周邊伺察)의 네 가지 혜행(慧行)을 닦아야 한다고 한다( 은정희, 1990). 이를 통해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지 수행만을 하면 자신 안의 세계에 갇혀 밖으로의 연결됨을 무시하고 등한시하여 대비 심을 내지 않을 수도 있다. 선행을 즐기지 않는 것은 자리 행(自利行)을 저버리는 것이고, 대비 심을 내지 않는 것은 이타 행(利他行)을 저버리는 것인데, 이를 보충하는 것이 관 수행이다.

(2) 관 수행

대승기신론의 관 수행 방법은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존재의 실상에 관한 관찰인 법상관(法相觀)이다. 이것은 법(존재)의 관찰로써 유위법은 무상이라고 보는 무상관(無常觀), 무상인 것은 고(苦)라고 보는 고관(苦觀), 세간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은 무아라고 보는 무아관(無我觀), 자기의 신체에 있는 농형이나 내장 등은 모두 부정이라고 보는 부정관(不淨觀) 등으로 관찰로써 모든 존재의 본성을 관찰하는 것이다.

둘째, 모든 존재의 실상에 대한 마음인 대비관(大悲觀)이다. 모든 중생은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무명으로 훈습되었기 때문에 망념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중생들을 가엾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관조를 대비관(大悲觀)이라고 한다.

셋째, 대원관(大願觀)으로써 대비를 베풀 것을 사유하고 커다란 용맹심을 일으켜 다음과 같이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넷째, 정진관(精進觀)이다. 위에 제시한 것과 같이 큰 서원을 세우고 쉼 없이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실천하며 포기하지 않고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고 관조한다(이평래, 2014).

수행자는 스스로의 번뇌를 다스려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지수행(止修行)과 함께 반드시 세상의 실체를 관찰하고 중생을 고통에서부터 구제하겠다는 관행(觀行)을 함께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행자는 이러한 수행과정을 통해 다른 중생들도 동일한 고뇌가 있음을 깨닫고 대 자비, 대 서원, 대 정진의 마음을 발하여 보살의 마음에 도달하는 것이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원효는 결론적으로 지와 관이 함께 갖추어지지 않으면 깨달음의 길에 완전히 들어섰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심일경성(心一境性)을 이루고자 하는 수행자는 일체 시 일체 처에서 그 수행하는 모습이 일관되어야 하고 가거나 오거나, 누워 있거나 일어서거나, 말하고 있거나 침묵하거나 항상 마음에 수행의 마음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수행자는 반드시 지관 수행이 같이[俱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심진여문에 의하여 입정에 들어 지(止)수행을 닦고, 출정하여 심생멸문에 의해 관(觀)수행을 닦아 언제 어디서나 일심으로 돌아가고 일심에 의해 모든 경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심일경성을 증득하는 것이 대승의 목표인 것이다. 본래 일심(一心)을 이문(二門)인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으로 나누어 설명했지만, 이 두 가지 문은 서로 ‘이문불상리(二門不相離)’한 것으로 일심은 완전체요, 일체로 총섭(總攝)됨을 전제로 한다.

즉, 사마타는 심진여문, 근본 무분별지, 평등관, 공관(空觀)의 입장이며 위빠사나는 심생멸문, 후득지, 차별관, 유관(有觀)입장으로서, 양자(兩者)는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이평래,2014). 지(止)를 통해 일념 상응의 경지에서 무분별지를 얻고, 관(觀)을 통해 생멸하는 현상세계에 대한 후득지(後得智)를 얻어 중생구제의 자비 행을 베풀어야 한다. 그리하여 지혜와 자비가 함께하고 이를 통해 범부는 생사고(生死苦)를 벗어나고 이승은 열반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는 것이다(한자경, 2013).

대승기신론은 이렇게 지 수행과 관 수행을 따로 떼어 설명한 후 실제로는 이 두 수행을 따로 떨어뜨리지 않고 함께 수행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걷거나 눕거나 일어나는 모든 경우에 마땅히 지관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은정희, 1990). 또한, 앞에서 언급한 수행신심분에서 설명되는 수행의 방법인 오행문[五行門 : 施門, 戒門, 忍門, 進門, 止觀門]에서 보시, 지계, 인욕, 정진은 수행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수행의 방법이 되며, 이를 통해 동시에 최종적으로 지관의 완성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관 수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열 가지 이익은 다음과 같다.

이 삼매를 전심전력으로 닦고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현세에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그는 온 세상의 모든 부처와 수행자의 보호를 받는다. 둘째로, 그는 모든 악마와 악귀의 침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셋째로, 그는 아흔 다섯 이단 귀신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 넷째로, 그는 부처와 심오한 가르침에 대한 비방을 멀리하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그의 마음에서 사라진다. 다섯째로, 그는 일체의 의심과 나쁜 마음을 없앤다. 여섯째로, 그는 여래와 그 경지에 관한 믿음을 점점 자라게 한다. 일곱째로, 그는 근심과 후회를 멀리하며 삶에 있어서나 죽음에 있어서나 용감하여 두려움이 없다. 여덟째로, 그는 마음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교만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하는 일이 없다. 아홉째로, 아직 삼매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도, 그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번뇌를 줄일 수 있으며, 세상살이의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열째로, 그는 바깥에서 들리는 일체의 말이나 소리에 놀라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이홍우, 2007).

즉, 대승기신론은 지관 수행을 통해 종국에는 바깥에서 들리는 일체의 말이나 소리에 놀라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행을 통한 나의 인식의 변화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재해석하게 해주며 그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고요하고 명료한 세계로의 진입을 뜻한다. 그 세계는 관 수행을 통해 완성됨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신 안의 세계에 갇혀 밖으로의 연결됨을 무시하고 등한시 할 수 있는 지 수행만의 고립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더 나아가 세상의 실체를 관찰하고, 나와 같은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겠다는 대비심을 내고 대 서원, 대 정진의 마음을 발하여 보살의 마음에 도달하는 관(觀)수행을 닦아야 한다. 그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일심으로 돌아가고 일심에 의해 모든 경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심일경성을 증득하는 것이 대승의 궁극 목표이며 지관 수행으로 깨달을 수 있는 우리의 본래 불성(佛性)인 것이다.

IV. ACT의 명상과 대승기신론의 지관 수행 비교

(1) ACT의 명상과 대승기신론의 지관 수행의 공통점

첫째, ACT는 치유 자와 치유 받는 자가 이분법으로 분화되지 않고, 주객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치유한다는 관점으로 마인드풀니스를 적용하고 있다. 즉, ACT는 이전의 서양 심리치료인 정신분석에서와 같이 인간은 무의식에 의해 지배당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제한된 의미에서 탈피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인간의 마음을 온전한 그대로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치유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자각을 통한 근원적인 치유라는 점에서 지관수행의 마음에 대한 접근법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붓다는 인간의 의지 작용을 업(業, karma)이라고 하고, 대상의 필연적 반응을 보(報.vipāka)라고 한다. 즉, 업은 자신의 의지가 현상들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표현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ACT와 기신론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 내적인 힘을 존중한다.

둘째, ACT는 마인드풀니스를 통하여 ‘수용하기’와 ‘기꺼이 경험하기’ 등의 모든 감정을 수용하여 더 온전하게 느낌으로써 자신의 삶을 더 완전하게 영위하려고 한다. 이는 기신론에서 ‘진여’를 마음 안에 완성된 실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진여를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수용하는 마음의 여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와 연결된다. 이는 ACT의 기꺼이 경험하기의 목표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감정을 수용하여 더 온전하게 느낌으로써 자신의 삶을 더 완전하게 영위하려는 것과 의미가 상통한다.

셋째, ACT에서는 마인드풀니스의 기제를 사용해 개념에서 사고를 탈 융합시켜 자기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지금-여기에서 현재를 경험하게 하는 관찰하는 자기,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기신론에서 설명하는 연기관에서의 ‘자기’의 개념과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원효는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소멸하는 무상의 존재일 따름이며, ‘나’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열린 존재로 바라볼 수 있으려면 내가 나를 조망하는 관찰자적인 입장인 새로운 맥락에서 나를 인식해야 함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ACT와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넷째, ACT의 마인드풀니스와 기신론의 지관 수행은 각자가 추구하는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가치가 존재함을 볼 수 있다. ACT에서의 가치는 개인에게 진정한 의미와 목표이며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의 삶을 정의한다. ACT는 그 가치를 실현하고 전념하게 방향을 제시한다. 기신론의 지관 수행 또한 대승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5행을 닦아서 4신을 성취함을 목표로 그 가치를 두고 있다. 즉, 소아(小我)에서 대아(大我)에로 세계관의 확장을 의미하는 대승은 그에 실천적 노력인 육바라밀을 구현하는 것을 궁극의 가치로 본다

다섯째, ACT의 마인드풀니스와 기신론의 지관수행은 모두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나와 분리하거나 분별하지 않으며 고통이 나의 내면과 흡수되며 생기는 감정들을 알아차리기 위해 명상의 기법을 사용한다. 양자(兩者)는 왜곡된 인지로 야기되는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 보다는 나의 마음을 관찰하고 통찰하여 자신의 가치를 구현해낸다는 점이 유사하

(2) ACT와 대승기신론의 지관 수행의 차이점

첫째, 기신론에서 지관수행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진행되는 수행의 핵심 기제로 도덕적 규범을 강조하는 반면, ACT의 마인드풀니스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행동을 활성화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명상을 활용한다. 즉, 불교에서는 무아(無我)의 논리를 주장하며, 자아에 대한 집착을 알아차려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ACT에서는 효과적인 심리치료 도구로써 관찰자로서의 자기를 강조한다. 마음의 장애에서 비롯되는 몸의 장애를 완화하고 제거하여 개인의 삶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건강한 사회 구성원의 양산으로써의 치료가 궁극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정신 건강의 목적을 위해 위빠사나 수행의 일부를 심리치료에 응용하여 사용하는 ACT의 마인드풀니스는 자칫 사상성의 부재로 치유의 방법들이 지속성을 갖지 못하고 일회성에 그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반면, 불교에서의 지관수행은 특정 목적을 위한 기술과 수단으로서의 부분적 요소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총체적 의미를 담고 있다. 기신론의 지관 수행을 통해서 우리들은 조건 없이 누구나 절대 진리의 법에 도달하는 경험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특히, 지 수행과 관 수행은 별개로 이루어지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지를 통해 관이 이루어지며 두 수행이 함께 해야 비로소 깨달음으로 완성되는 총체적 의미의 체험 행동이다.

셋째,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나’와 ‘타자’의 범위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ACT의 마인드풀니스가 현상에 대응하는 인식구조로써 개인에 그 범위를 한정하였다면, 기신론의 지관수행을 실행하는 개인은 ‘나’를 중심으로 분별하는 인식 상태(不覺)에서, ‘나’와 ‘남’의 구분 이전의 절대 평등, 무분별적인 인식을 추구해감(始覺)에 따라, ‘나’와 다른 ‘남’이 아닌 ‘또 다른 나’로서, 개인의 범위가 ‘나’에 국한되지 않고, 모두가 하나 되는 ‘일심(一心)’의 관계로 그 범위가 확대된 개념이다. 즉, 나는 개별적 ‘나’가 아니라 타자와 공존하는 ‘나’이며, 나의 지향점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적 ‘나’이다. 중생교화의 적극적인 실천을 현실에서 펼치는 초월적인 ‘나’의 범위는, ACT에서의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감정들을 더 온전하게 느낌으로써 자신의 삶을 더 완전하게 영위하려는 개인적인 ‘나’의 범위와 차이가 존재한다

넷째, ACT와 기신론의 자아의 개념에서 차이점이 존재한다. 기신론에서의 무아는 탐, 진, 치에 의해서 좌우되는 자아가 소멸된 상태이다. 따라서 자아는 모든 형태로 될 수 있고 동시에 모든 존재로 들어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무자성(無子性)이며 공(空)의 성격을 띤다. 나와 현상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그 현상들 또한 법[法, 진리]의 실체화이다. 즉, 나의 존재에 비례해서 모든 현상의 존재가 드러나는 상호 유기적이고 동일한 관계이다. 반면 ACT의 자아는 심리적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와 현상과의 존재를 계속적으로 검증하고 확인하여 유연성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성향을 띤다. 즉, 현상은 타자로 존재하며 자아는 그 거리를 객관적으로 유지하며 자아의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외부세계를 재해석한다.

다섯째, ACT에서의 가치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추구하는 방향성을 포함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선택’과 ‘판단’을 구별하게 하며, 가치는 선택임을 가르치는데, 가치란 개인에 따라 다양하며 그 선택 또한 본인에게 귀결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ACT에서의 가치란 다분히 개인의 행복 지향적이며 개인이 실현 가능한 목표를 상정하게 된다. 즉, ACT에서는 개인이 설정한 자신의 가치를 삶 속에서 실천하며 지속적인 자각을 통해 행동을 활성화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ACT의 궁극 목표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기신론에서는 생사의 고해를 건너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실천수행법인 육바라밀-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보살의 진정한 가치로 강조하고 있다.

여섯째, ACT는 초기 불교의 위빠사나의 명상기법을 적용하고 활용한 치료기법임에 비교하여 기신론의 지관 수행은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동시에 진행하는 수행의 한 과정이며 앞의 보시, 지계, 인욕, 선정이 수반되어야만 드러나는 수행 단계의 완성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ACT는 개인 심리 완성에 그 목표를 둠으로써 나와 구별되는 타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대신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상과 같이 ACT의 여섯 가지 치료 기제에 적용하는 마님드풀니스와 기신론의 지관 수행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았다. ACT의 마인드풀니스가 불교적 색체를 제거하고 사띠의 호흡법과 집중, 몰입만을 응용하려는 심리학계, 의학계의 적용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치료적 관점에 치우쳐 있음이 우려되고 있다. 불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깊은 정신은 생략되거나 왜곡될 소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지관 수행의 활용을 ACT의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마음 치유 프로그램을 매개로 수용자에게 전달하여 지금의 심리치료의 기능을 수행하고자 함이 절실하다.

V. 결론

지금의 우리 사회는 수명연장과 복지와 정치의 안정 그 이면에 계층 간의 혐오와 분노로 인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성별에 따른 혐오, 세대 간의 혐오 및 악성 댓글로 인한 인간성 말살과 청년들의 무기력과 자포자기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금의 현대사회는 개인주의가 가져온 인간소외와 각종 사회 병리 현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정신은 날로 피폐해져 가고 있다. 인간의 존엄은 상대적 가치에 그 귀함과 절대성을 잃게 되었다, 혼자 사는 세대가 증가하며 청년 실업과 독거노인 율 증가, 출산율 저하와 전 세대에 걸친 자살의 증가 등 갈등과 반목의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은 심신이 병들어 가고 있다

평균 수명의 연장이 무색할 정도로 삶의 질은 바닥을 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자살 시도자 보고 현황’에 따르면 2011년 37명이었던 자살 시도 학생은 2015년 258명으로 늘더니 작년 2017년에는 451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 통계는 학교가 시, 도교육청에 자발적으로 보고한 내용이기 때문에 실제 수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아이들이 심리적 재난 상황에 처했다.”고 진단하고 있다(조선일보,2010,10,10).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스승의 역할이 아직 존재하는가? 지금의 한국불교는 종단과 사찰 관리 및 운영과 출가자의 수행 생활과 재가불자의 신행 생활 그리고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 정법(正法)을 지도하는 구심점이 없다고 보여진다. 지금이야말로 불교계는 붓다의 정신을 추구하는 수행자들과 재가자들이 강력한 정신적 지주로 연대하여 현대인의 가슴에 희망과 충만의 마음을 불러일으켜야 할 때이다. 즉, 불성을 가슴에 담고 붓다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분별과 고립을 넘어 관계와 소통을 지향하여 걸림 없는 자유를 구현하는 불교의 진리인 개체의 공성은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 되었다는 연기와 연결된다. 온 우주가 걸림 없이 소통한다는 무애(無礙)의 마음이 기신론의 일심(一心)이며, 동시에 ACT의 마인드풀니스를 기반으로 하는 여섯 가지 치료기제가 자유자재로 구사되는 심리적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들이 걸림 없이 상호소통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원리 속에는 동, 서양의 명상도 포함된다.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해 존재하며 서로 침투하고 서로 의지하는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원효는 평등 가운데 차별이 있으며 차별 가운데 평등이 있다는 화엄(華嚴)의 사상과 평화와 화합의 사회를 건설하고자 대중의 삶을 살며 화쟁(和諍)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원효는 교설이나 학설에 경계를 두지 않고 융합하고 수용하여 보다 높은 차원에서 새로운 가치를 구현했다. 마치 바람 때문에 일어난 파도가 바다와 하나인 것처럼, 모든 중생의 내면을 일심(一心)으로 관통하였다. 분별의 경계를 허물고 육바라밀의 지관수행을 실천 수행으로 내세워 화쟁(和諍)과 무애(无涯)의 사회를 펼쳐 보였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동. 서양 명상, 소승과 대승 불교, 남방과 북방 불교, 인도 철학과 선불교 등 모든 존재는 원래부터 분별없는 유와 무의 동시적 작용으로 존재한다. 그곳에는 고유한 성질이 없음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번뇌와 지혜로도 구분할 수 없음으로 갈애(渴愛)도 사라진다. 고유한 성질을 갖지 않는 공(空)은 다른 것에 서로가 의존함으로써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이 세상을 작용하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불교의 고귀한 수행 정신이 보편적 언어와 현대적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대중적 공감을 전제로 거듭나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불교의 핵심교리와 수행 방법이 녹아 있는 심리 치유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현대인들이 실제 생활에서 즉각적으로 적용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고귀한 불성을 불러일으켜 서로가 밝은 빛으로 비춰주는 인드라망의 구슬의 연결이 필요한 위기의 시간이다. 마음을 치유하는 동, 서양의 진리가 한 마음으로 모여 서로가 힘을 합쳐 아프고 병든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 앞장서야 할 분명한 이유가 그곳에 있다. 연구자는 본 논문을 토대로 동, 서양의 명상치유의 융합 점을 더 심도 있게 종합 비교 분석하여 새로운 명상치유 프로그램을 제시함을 차후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Ⅵ.제언

ACT와 대승기신론 어느 것도 이해되어 본 논문을 쓰기 시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와 좌절의 쓴 맛을 계속 경험하게 되었다. 단지 따로따로 접한 두 개념이 둘 다 사람의 마음이 그 주제이고 그 사람의 마음의 존귀함을 밝혀, 스스로 구현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에 연구자 또한 마음이 움직였다. 두 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넘어서서 그 안에 면면히 흐르는 사람의 마음을 바로 세워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보게 되었다

삶에서 고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 고통을 온전히 수용하며 나의 더 큰 가치로 회귀하는 일련의 나의 작용은 명상과 지관수행의 핵심 개념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 ACT의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여섯 가지 치료기제를 성공적으로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마인드풀니스는 기신론의 지관 수행과 융합 적용됨으로써 마음의 통찰을 전면에 내세우는 새로운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의 불교는 2,500년의 인류의 지혜가 저장되어 있는 진리를 현제의 시류에 맞게 보급하고 실용화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고 본다. 그 진리를 서양의 심리 치료 기법의 적용과 응용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통섭하여, 불교의 진리가 종교를 초월하여 모두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 적극 나서기를 바란다

References

논문류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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