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gnificance of Vedanā in Vipassanā - The Feeling of Buddha and Antonio Damasio Perspective-

Research
남 일희  Ilhi Nam1*

Abstract

In the early Buddhist tradition, the Mind(citta)·Spirit(mano)·Consciousness(viññāṇa) are regarded as synonymous concepts, and are used separately according to the location written in the Sutta. Then, despite the fact that the Buddha regards Mind, Spirit, Consciousness as synonyms, why did he use them separately in the preach? We will look at the synonymous-separability of the Mind·Spirit·Consciousness, and the pluralistic healing of mind in meditation. To do this, we will look at the mutual relationships of the Mind·Spirit·Consciousness through the early Sutta and their explanatory notes(aṭṭhakathā). They are same in the meaning of Knowing, and each act as an emotional, rational, and cognitive aspect to the practice of meditation. And the Mind·Spirit·Consciousness are in the same area of the mind, and have the synonymousseparability which has a close influence on each other. They all seem to occur at the same time, but they are divided into different internal mechanisms and are complementary. So these mutual relationships is viewed as horizontal and complementary. Through this, the eight degree of meditation is carried out, which brightens the spirit, cleans the mind, and relieves the pain of consciousness, and finally the pluralistic healing of mind is achieved.

Keyword



I. 들어가는 말

인간은 오온인 물질·느낌·지각·의도·의식으로 구성되며, 이를 명색(名色)으로 보면 명은 정신이고, 색은 물질이 된다. 그리고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는데, 이때 몸에 대비되는 마음을 마음·정신·의식(이하 심·의·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심·의·식의 구분에 대해 초기불교의 주석적 전통이나 아비달마 불교에서는 이들을 동의적 개념으로 보고 있다.(T. W. Rhys Davids, 1972: 686) 그러면 붓다는 심·의·식을 동의어로 보고 있음에도, 왜 용어상으로 이들을 구분하여 법을 설하였을까? 그것은 붓다 재세 시 인도 사회에서 용어의 다양성과 법을 체계화하는 상황에서 용어의 적합성 등을 들 수 있다. 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45년간 중생제도를 위해 법을 설하였다. 이중에서 “14번째 안거와 21번째부터 43번째까지의 23안거를 사왓띠(Sāvatthi)의 제따 숲[Jetavana]과(18안거) 동쪽원림[東園林, Pubbārāma]에서(5안거)를 보내시며, 후반 20여년 간은 법의 체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 중략 … 특히 붓다께서 강조하신 온(蘊, khandha), 처(處, āyatana), 계(界, dhātu), 체(諦, sacca),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등의 중요한 용어와 가르침을 붓다 후반기와 입멸 직후에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시되었다.”(대림‧각묵, 2017: 56-57) 그래서 붓다는 중생제도를 위해 법을 설함에 있어 중생의 이해에 적합하도록 용어를 체계화해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열반에 들고자 하는 명상수행에서 법(dhamma)에 대한 적합한 이해와 여법한 수행을 위해, 붓다는 심에서 의와 식을 구분하여 법을 체계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심·의·식의 동의성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붓다에 의해 정립된 이래로 초기불교를 거쳐, 부파불교, 유식불교, 대승불교까지 많은 시기를 거치면서, 이들에 대한 해석에도 많은 변화가 있게 된다. “대념처경에서 나타나는 심념처에 대한 연구”에서 정준영(2009: 207)은 초기경전에서는 심·의·식이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상좌불교의 심식설과 수행계위”에서 미산(2002: 54)은 “상좌불교의 심식설은 다섯 감각영역[오문, pañcadvāra]에 들어온 외부 정보들과 마음영역[심문, manodvāra]에 이미 들어와 있는 정보들이 어떻게 처리되어 삶의 업 에너지를 형성하게 되는 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하여, 의식과 정신의 연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심·의·식의 연관성은 부파불교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분리하여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에 대해 “5심에 관한 연구”에서 박재용(2014: 2)은 초기불교에서 같은 의미로 쓰이던 심(心)·의(意)·식(識)을 부파불교 후반기부터는 분리해 그 기능상에 차이를 두어 사용하였으며, 이들의 심체도 서로 다르게 적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무착의 유식학설 연구”에서 황욱(1999: 123)은 “부파불교시대까지 심·의·식은 그 뜻하는 바는 각각 다르지만 심체는 하나였다. 그러다가 대승불교시대에 들어와 심체가 각각 다르다는 사상이 출현하고 이에 따라 ‘심’은 제팔 아뢰야식, ‘의’는 제칠 말라식, ‘식’은 제육식이라는 각각 독립된 별개의 식체를 지칭하게 되었다.” 고 한다. 이렇듯 심·의·식의 동의적 관계 및 상관성이 시대적으로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심·의·식의 관계가 이렇듯 후대에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초기경전에서는 심·의·식에 그 뜻의 동의성을 두고, 심체는 같다고 보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심·의·식의 의미와 상호연관관계 그리고 동의분리성에 대해 알아보고, 명상수행을 통해 작용하게 되는 심·의·식의 다원적 마음치유에 대해 살펴보겠다.

본문에서 논의 해나가는 전개는 초기불교의 경장인 오부 니까야를 중심으로 하며, 그 주석서 역시 본연구의 논거로 삼을 것이다. 주석서를 초기불교의 범주에 넣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으나, 연구자는 마힌다장로에 의해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불교가 넘어 갈 때 앗타까타(Aṭṭhakathā, 주석서)도 넘어갔으며, 이것이 AD5세기경에 붓다고사에 의해 기록 되었다는(이필원, 2010: 51) 의견을 따른다. 따라서 그 규모는 알 수 없으나 붓다 당시[니까야의 성립시기]부터 앗타까타는 활용 되었다고 보여 지기 때문에, 주석서 역시 초기불교의 범주 안에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재론의 여지는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범주를 두고 문헌적 연구를 진행하고자 함이다. 본 연구에서 용어를 한정 해보면 ‘명상수행(瞑想修行)’은 지관수행(止觀修行)을 통해 삶의 본질을 깨달아 해탈·열반에 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수행(佛敎瞑想)을 말한다. ‘윈냐나(viññāṇa)’는 식(識) 또는 의식, ‘찟따(citta)’는 심(心) 또는 마음, ‘마노(mano)’는 의(意) 또는 정신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제육식인 ‘의식(manoviññāṇa)’은 의식[MV]으로 표기한다. ‘마노’와 ‘윈냐나’는 마음으로 동일하게 해석되기도 하는데, 이들의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마노의 경우는 마음[M], 윈냐나의 경우는 마음[V], 그리고 심·의·식을 총괄하는 광의적 의미의 마음은 마음[G]으로 표현하겠다.

Ⅱ. 심·의·식의 구성

심·의·식은 그 뜻에 동의성을 띄고 있으며, 용어상으로 이들을 분리해 사용하게 된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이들의 사전적 정의와 일체법에서 갖게 되는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다. 이를 통해 심·의·식이 용어상으로 갖고 있는 내용과 그 뜻의 차이점 등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심·의·식의 정의

인간은 몸과 마음[G]으로 구성되며, 이때의 마음[G]을 다시 마음·정신·의식인 심·의·식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초기경전에서 사용된 위치에 따라 심·의·식은 기능상에 차이를 보이게 된다. PED에서는 심·의·식이 각각 emotional(정서적)·rational(이성적)·perception(인식적)의 측면이 있다고(T. W. Rhys Davids, 1972: 299) 보고 있다. 또한 정준영(2009: 207)은 심·의·식이 각각 정서(情緖)적 측면, 이성(理性)적 측면, 인식(認識)적 측면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심·의·식의 의미를 초기경전과 PED 등을 통해 빠알리어의 원어적 의미와 일체법에서의 역할 등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심(心, 찟따, citta)의 의미

마음인 찟따는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진 √cit(to think)이라는 어원에서 나왔으며, cetati(생각하다)의 의미가 있다.(T. W. Rhys Davids, 1972: 299) 그리고 “기억과 업보를 쌓아가는 수동적인 정신적 작용을 나타내는데, 이는 ceta라고도 알려져 있다. … 중략 … 이 어원을 살펴보면, citta와 ceta 두 단어 모두 ‘생각하다’를 뜻하는 과거분사이고, 수트라에서는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작용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G. A. Somaratne, 2005: 189) 또한 찟따는 마음, 생각, 심(心)의 뜻을 나타내며, 마음으로 번역하고, 심리적 측면, 정서적 측면, 인지적 측면으로 의도·충동·기분·성격·마음의 상태·인상에 대한 반응을 다루는데 주로 사용되고 심장으로 구체화된 요소적 특징을 가진다.(전재성, 2012: 385) 그래서 본고에서는 찟따를 마음으로 해석하며, 대상을 아는데 정서적 측면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리고 일체법에 대한 명상수행인 사념처[身念處·受念處·心念處·法念處]와 팔정도 수행을 통해 마음을 계발하게 된다. 이에 대해 맛지마니까야 ‘새김 토대의 큰 경(Mahāsatipaṭṭhānasutta)’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열여섯 가지 마음에 대해 이러한 마음을 안으로(ajjhatta), 밖으로(bahiddhā) 또는 안팎으로 관찰하여, 마음의 생멸(samudayavaya)을 관찰하게 된다고 한다(T. W Rhys Davis, 1966: 299). 또한 붓다는 앙굿따라니까야(Anguttara Nikāya) ‘누각의 경(Paṭhamakūṭasutta)’에서 마음은 사람이 신·구·의(身·口·意)를 통해 업보의 행동들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되며, 만약 사람이 마음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그의 몸·말·정신의 활동들도 관리되지 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REV. Richard Morris, 1961: 261) 그래서 마음은 일체법을 통한 명상수행에서 명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음[G]에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요소가 되므로 이를 잘 계발해야 한다.

2) 의(意, 마노, mano)의 의미

정신인 마노는 ‘√ man(to conceive)’이란 동사 어근에서 나왔으며, ‘만’ 이라는 동사의 포괄적 의미는 ‘생각하다’이다.(T. W. Rhys Davids, 1972: 578) 또한 ‘마나스’란 말이 복합어로 사용될 때 의업(意業), 의행(意行) 등의 사용 예와 같이 행동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그리고 마노는 정신, 의(意)의 뜻을 나타내며, 불교철학에서 정신(意: mano)은 다른 감각기관을 제어하며, 사실(法: dhamma)을 자신의 대상으로 한다. 또한 정신은 마음보다 미세한 느낌·사유를 말하며, 이지적이고, 추론적이며, 합리적 측면의 중심으로 의식의 지적·사유적 기능을 나타나고 있다.(전재성, 2012: 591) 그래서 본고에서는 마노를 정신으로 해석하며, 대상을 아는데 이성적 측면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리고 일체법인 십팔계에서 오근과 오경의 작용으로 전오식이 생성되며, 의근(정신의 근)과 법경의 작용으로 의식[MV]이 형성된다. 맛지마니까야(Majjhima Nikāya) ‘바른 견해 경(Sammādiṭṭhi sutta)’에서 정신에 대해 안·이·비·설·신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같이 정신도 감각기관(manāyatanaṃ)이며(V. Trenckner, 1979: 52), 정신의 근이 법경과 화합하여 생성되는 의식[MV]은 정신의 식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일체법에서 정신은 감각기관이며, 법을 기반으로 지적·사유적 이해를 가져오게 한다. 이렇게 감각기관이며, 지적·사유적 이해를 가져오는 정신은 명상수행에서 대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3) 식(識, 윈냐나, viññāṇa)의 의미

의식인 윈냐나는 vi(분리해서)+√ jna(to know, 알다)에서 파생된 중성명사이며, 진행을 나타내는 중성명사형 어미 ‘-na’를 붙여서 사용한다. 문자 그대로 ‘분리해서 아는 것’이라는 의미이다.(T. W. Rhys Davids, 1972: 686) 그리고 윈냐냐는 알음알이, 식별, 인식, 의식, 식의 뜻을 말하며, 이를 감각과 감각적 반응인 지각의 중심으로 순수한 알아차림(전재성, 2012: 651)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윈냐냐를 의식으로 해석하며, 대상을 아는데 인식적 측면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리고 일체법(一切法)인 오온, 십이처, 십팔계에서 의식은 이들의 구성요소가 된다. 이에 대해 미산(2009: 4)은 “붓다는 인간존재를 포함한 모든 연기된 존재를 주로 오온이라는 용어로 표현했고 경우에 따라서 십이처 혹은 십팔계라 설하기도 했다. 연기된 모든 존재현상을 나타낸다 하여 일체법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십이처는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으로 형성되고, 십팔계는 십이처에 더해 육식인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을 포함하며, 이때의 의식은 십팔계의 생성에 흐름을 가져오게 한다. 이렇게 의식은 이 세상을 형성하는 일체법에서 오온과 십팔계에 흐름을 가져오며, 이를 통해 명상수행의 흐름에 연속성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2. 심·의·식 뜻의 동의성

초기불교의 주석적 전통에서는 심·의·식을 동의어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쌍윳따니까야(Saṃyutta Nikāya) ‘배움이 없는자의 경(Paṭhamāssutavāsutta)’에서 “비구들이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정신이라고도 하고, 의식이라고도 한다”(M. Leon Feer, 1989b: 94)고 하여, 이들의 동의성을 말하고 있다. 또한 맛지마니까야 ‘교리문답의 긴경(Mahā-vedalla Sutta)’에서는 대상을 “분별해서 알기에 의식이라고 한다.”(V. Trenckner, 1979: 292)고 하며, 이띠붓따까 주석서(Iti-Vuttakaṭṭhakathā)에서는 “대상을 식별하는 것이 의식이라는 것은 명백하다”(M. M. Bose, 1977: 9)고 한다. 그리고 쌍윳따니까야 ‘열뇌의 경(Pariḷāhasutta)’에서 “정신으로 법을 알게 된다.”(M. Leon Feer, 1989a: 451)고 하여, 정신에 의해 대상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담마상가니 주석서(Atthasālinī)에는 “대상을 사량하기에 마음이라 한다. 즉 안다는 뜻이다.”(Edward Muller, 1979: 63) 이와 같이 심·의·식은 명칭은 다르지만 안다는 의미에서 동의성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심·의·식이 경전 안에서 그 놓인 위치에 따라 어떻게 상호간에 동의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1) 의식(viññāṇa)과 마음(citta)의 동의성

초기경전에서 의식을 마음[V]으로도 해석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앙굿따라니까야 ‘판다나 나무의 경(Phandanasutta)’에서 “마음처럼 빨리 변화하는 것으로 간주할만한 다른 하나의 원리도 보지 못했다”(REV. Richard Morris, 1961: 10)고 하며, 이에 대한 주석서인 마노라타뿌라니(Manorathapūranī)는 “여스승(ācariyā)은 마음을 존재지속심(存在持續心, bhavaṅgacitta)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며, 여기서의 마음은 적어도(antamaso) 시각의식(cakkhuviññāṇa)을 의미하는 것으로 말해진다.”(Max Walleser, 1977: 59)고 하여, 여기서의 마음[V]은 의식(viññāṇa)을 말한다고 한다.

또한 ‘바른 견해 경’의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Papañcasūdani)에서 “52번째 의식(dvipañcaviññāṇa)에 대해 말하면, 그런 상태의 이숙의 마음(vipākacitta)이라는 명칭이다.”(J. H. Wood, 1977: 222)고 하여, 의식을 마음[V]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맛지마니까야 ‘교리문답의 짧은 경(Cūḷa-edalla Sutta)’에서도 “들숨[assāsa]과 날숨[passāsā]은 몸의 작용이며, 일으킨 생각[vitakka]과 지속적 고찰[vicāra]은 말의 작용이고, 인식[想]과 느낌[受]은 마음의 작용(cittasaṅkhāro)이며, ··· 중략 ··· 마음부수[心所, cetasikā]이다.”(V. Trenckner, 1979: 301) 고 하여, 일반적인 오온의 설명에서는 수와 상의 연결을 의식으로 설명하는데, 여기서는 마음[V]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마음의 작용[心行]과 마음부수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맛지마니까야 ‘요소의 분석 경(Dhātuvibhaṅga Sutta)’의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에서 “의식의 요소(viññāṇadhātū)는 마음(citta)이며 의식의 무더기(viññāṇakkhandha)이다. 이와 같이 동시에 발생된 느낌은 느낌의 무더기이고, 지각은 지각의 무더기이며, 접촉과 의도는 행의 무더기이다. 이러한 네 가지를 비물질의 무더기(arūpakkhandha)라 한다.”(J. H. Wood, 1979: 278)고 하여, 여기서 의식의 요소를 마음[V]으로 보고 있다.

또한 ‘바른 견해 경’의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에서 “두 번째 시각적 접촉 등 여섯 가지 역시 네 가지 자양(cattāro āhāra)에서 두 번째 자양으로 경험된다. 전달되는 것은 이렇게 원하게 되며 그러므로 이것은 행위로도 두 번째라 칭한다. 세 번째는 여기에 추구되지는 않는다. 이는 정신적의도(manosañcetanā)이며 의도라고 불리어진다. 의식(viññāna)은 무언가 마음(citta)이다.”(J. H. Wood, 1977: 209)라고 한다. 그래서 존재하는 중생을 보양할 네 가지 음식인 단식, 촉식, 의사식, 식식 중에서 네 번째인 ‘의식(識)의 음식(食)’에서 의식(識)을 마음[V]으로 보았다.

그리고 ‘교리문답의 긴경’의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에서 “수명(āyu), 온기(usma)와 의식(viññāna)은 물질의 생명기능(rūpajīvitindriya), 업에서 생긴 불의요소(kammajatejodhātu), 마음(citta)이며, 이러한 세 가지 담마가 물질의 몸에서 떠날 때 생각이 없는(acetana) 나무토막(kaṭṭha)처럼 땅에 버려져 누워있게 된다.”(J. H. Wood, 1979: 351)고 한다. 그래서 수명(āyu)·온기(usma)·의식(viññāna)이 몸을 떠나면, 몸이 무정물인 통나무처럼 내던져져 누워있게 된다고 하며, 이때의 의식을 마음[V]으로 보고 있다. 또한, 쌍윳따니까야 ‘불사의 경(Amatasutta)’에서 “수행승들이여 마음의 발생이란 무엇인가? 명색이 생겨나면 마음이 생겨난다. 명색이 소멸하면 마음이 소멸한다.”(M. Leon Feer, 1989d: 184)고 하여, 여기서 의식의 자리에 마음[V]이 위치하고 있어 의식과 마음을 서로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의식을 마음으로도 사용하고 있으며, 문맥에 따라 이들이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 정신(mano)과 마음(citta)의 동의성

초기경전에서 정신을 마음[M]으로도 해석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맛지마니까야 ‘꿀 덩어리 경(Madhupiṇḍika Sutta)’의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는 “그런데 여섯 번째 경우인 정신(mano)은 존재지속심(bhavaṅgacitta)이다. 법은 삼계의 법인 대상이다. 의식[MV]은 전향 또는 속행이다. 전향과 결합한 접촉, 느낌, 지각, 일으킨 생각은 전향과 동시에 발생된다. 희론은 속행과 동시에 발생된다. 속행과 결합한 전향과 함께한 존재지속심은 정신이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접촉 등 모든 법들은 역시 속행과 동시에 발생된다.”(J. H. Wood, 1979: 77)고 한다. 그래서 정신과 법을 조건으로 의식[MV]이 일어나며, 여기서 정신을 ‘존재지속심’으로 보아 마음[M]으로 보았다. 또한 ‘교리문답의 긴경’에서 “벗이여 죽어 생을 마친 자는 신행(kāyasaṅkhāra)이 소멸하여 가라앉고, 구행(vacīsaṅkhāra)이 소멸하여 가라앉고, 심행(cittasaṅkhāra)이 소멸하여 가라앉으며, 수명(āyu)이 멸절되고, 온기(usmā)가 가라앉으며, 감각기능(indriyāni)이 완전히 파괴 됩니다.”(V. Trenckner, 1979: 296)라고 한다. 여기서 삼업(三業)은 신(身)·구(口)·의(意)로 짓는 업을 말하며 삼업을 짓지 않는 자는 생을 마친 자이거나, 더 이상 이 세상으로 윤회하지 않는 깨달은 자이다. 죽어 생을 마친 자는 신행(身行)·구행(口行)·심행(心行)이 소멸해 가라앉으며, 수명은 다하고, 온기는 식으며, 감각기능은 완전히 파괴된다고 한다. 이러한 삼업은 신행·구행·의행(意行)이고, 마음[M]자리인 심행(心行)은 의행(意行)이며, 여기서 정신과 마음이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맛지마니까야 ‘갈애 멸진의 긴 경(Mahā-taṇhāsaṅkhaya Sutta)’에서 “정신과 법들을 조건으로 해서 발생된 의식은 정신의 식(識)이라고 정의(saṅkhaṃ)된다.”(V. Trenckner, 1979: 260)고 한다. 이의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는 “이러한 의식은 조건적 존재(paccayabhāva)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수행승은 말한다. 여기서 정신(mano)과 조건적법(paṭiccadhamma)과 전향과 함께 함은 잠재의식(bhavañgamana)과 삼계의 법(tebhūmakadhamma)과 조건화(paṭicca)를 말한다.”(J. H. Wood, 1979: 306)고 한다. 여기서 '정신(mano)'이란 바왕가마노(bhavaṅgamano, 잠재의식)를 말하고, 바왕가마노(bhavaṅgamano)는 바왕가 찟따(bhavaṅgacitta, 존재지속심)와 연결된다. 이와 같이 정신과 마음이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정신(mano)과 의식(viññāṇa)의 동의성

초기경전에서 정신을 의식으로도 해석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법구경(Dhammapada) ‘쌍의품(Yamakavagga)’은 “정신(mano)이 사실들[수·상·행]의 선구이고 정신이 그것들의 최상이고 그것들은 정신으로 이루어진 것이니”의 주석서에서 수·상·행은 정신을 선구로 해서 나타나며, 정신에서 생겨난다고 한다.(전재성, 2012: 229) 이것을 오온으로 보면 의식이 수·상·행의 선구이므로, 의식의 자리에 정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바른 견해 경’의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에서 “의식의 경우 안식(眼識, cakkhuviññāṇa)은 눈의 식이다. 또는 눈에서 생겨난 식이다. 이렇게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이 있다. 그러나 이것[전오식]과 다르게 정신(mano)은 식(viññāṇa)이며, 이것은 의식(意識, manoviññāṇa)이다.”(J. H. Wood, 1977: 222)라고 한다. 여기서 정신을 의식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쌍윳따니까야 ‘자양의 경(Āhārasutta)’의 주석서인 사랏탑빠까시니(Sāratthappakāsinī)는 다시 태어남의 순간에 첫 번째 의식을 존재지속심(bhavaṅgacitta)이라 한다.(F. L. Woodward, 1977b: 28) 이렇게 다시 태어남을 일으키는 재생연결식(paṭisandhiviññāṇa)은 존재지속심과 연결된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때의 존재지속심은 잠재의식(bhavaṅgamano)과 연결된다. 그래서 정신인 잠재의식과 의식인 재생연결식은 연결된다. 이와 같이 의식과 정신이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초기경전과 이의 주석서를 통해 심·의·식이 서로 간에 뜻의 동의성을 띄고 사용되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Ⅲ. 심·의·식의 상호 연관관계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심·의·식은 뜻에 동의성을 띄고 있으며, 또한 기능상으로 구분되는 분리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서로 간에 밀접한 연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동의성을 띄고 있으면서도, 분리성으로 구분되는 심·의·식의 상호 연관관계에 대해 살펴보겠다.

1. 동일한 마음영역에서 발생

심·의·식은 동일한 마음영역에서 발생하게 된다. 식을 기준으로 한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전오식은 오경인 색·성·향·미·촉과 오근인 안·이·비·설·신과 화합하여 발생되며, 정신은 이를 받게 되고, 법을 대상으로 한 의식[MV]을 형성하게 된다. 여기서 전오식을 통괄하는 정신과 의식[MV]을 구성하는 의식은 연결되므로, 의식[MV]의 입장에서는 정신과 의식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고 ‘요소의 분석 경’의 주석에서 “여기서 허공의 요소는 물질을 한정(pariccheda)하기 때문에 파생된 물질(upādā-rūpa)에 속하고, 의식의 요소는 정신(nāma) 즉 모든 마음과 마음부수를 다 포함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 여섯 가지 요소[六大]는 삼계의 정신·물질(명색, nama-rupa)을 모두 다 포함 한다.”(대림, 2012b: 483) 그래서 의식은 정신과 마음을 다 포함하는 동일한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표 Ⅲ-1. 동일한 마음[G]영역에서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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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쌍윳따니까야 ‘배움이 없는 자의 경(Paṭhamāssutavāsutta)’의 주석서인 사랏탑빠까시니에서 심·의·식에 대해 “심은 일체의 정신의 영역(manāyatana)을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의 토대이고, 마음의 활동영역이며, 관련된 상응법의 마음이기 때문이다.”(F. L. Woodward, 1977b: 98)고 한다. 그래서 마음[G]은 일체의 정신영역이며, 이러한 동일한 마음[G]영역에서 심·의·식은 발생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전재성은 “심은 느낌·지각과 관련이 있고, 의는 사유·숙고와 관련이 있으며, 식은 감각적 인식과 관련이 있고, 이들을 동일한 정신영역으로 보았다.”(전재성, 2014: 380)고 한다. 그래서 마음은 정서적인 측면인 느낌과 관련이 있고, 정신은 이성적인 측면인 사유와 관련이 있으며, 의식은 인식적인 측면인 감각적 인식과 관련이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마음작용인 느낌(受)·지각(想)·행(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 마음[G]에서 발생하게 되는 이러한 심·의·식은 동일한 마음영역에서 발생하게 되며,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심·의·식이 동일한 마음[G]영역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이들이 갖고 있는 기능상의 차이로 인해 서로 유기적이며, 밀접한 상호 연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 마음은 느낌 등을 형성하는 정서적 측면을 중심으로 마음[G]에서 발생되며, 정신은 사유 등을 형성하는 이성적 측면을 중심으로 마음[G]에서 발생되고, 의식은 감각적 인식 등을 형성하는 인식적 측면을 중심으로 마음[G]에서 발생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인 ‘2. 심·의·식 용어의 분리성’에서 살펴보겠다. 이렇게 동일한 마음[G] 영역에서 마음의 정서적 측면과 정신의 이성적 측면 그리고 의식의 인식적 측면이 상호 연관관계를 형성하며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상호연관 작용에 의해 마음작용인 느낌·지각·행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심·의·식은 동일한 마음[G]영역에서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2. 심·의·식 용어의 분리성

동일한 마음영역에서 발생되는 심·의·식을 심체가 같은 동의어로 보고 있으며, 이들이 구분되는 기능상의 분리성이 명상수행에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심·의·식이 각각 정서(情緖)적 측면, 이성(理性)적 측면, 인식(認識)적 측면을 중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이 심·의·식이 기능적으로 서로 다른 측면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의 특징을 중심으로 한 심·의·식 용어의 분리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정신(mano)에 대한 용어의 분리성

심·의·식 중에서도 정신은 마음[G]의 이성적 측면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는 마음에 선악(善惡)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인(네이버, 2020b) 이성적 기능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해 소마랏네는 “정신이 소통의 여섯 가지 형태 중 하나로 나와 있다. 정신은 다른 감각들과 같은 기능을 할 뿐이다. 예를 들어, 여섯 가지 감각이 생겨나면서, 정신을 포함한 모든 감각과의 접촉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이 감각들이 멈추게 되면, 다른 감각과 함께 정신의 감각과도 접촉이 끊기게 된다.”(G. A. Somaratne, 2005: 186)고 한다. 그래서 정신은 육근의 하나이며, 오근인 다른 감각기관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섯 가지 감각이 생겨나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의 접촉이 발생하며, 이 감각들이 멈추게 되면, 정신의 감각과도 접촉이 끊기게 된다. 또한 ‘바라문 운나바의 경’에서 붓다는 전오근은 ‘정신을 의지하며, 정신은 사띠를 의지처(paṭisaraṅa)로 하고, 사띠는 해탈을 의지처로 하며, 해탈은 열반을 의지처로 한다’(M. Leon Feer, 1989d: 218)고 한다. 그래서 감각기관의 역할을 하며, 전오근의 의지처가 되고, 의근을 통해 일어나게 되며, 사띠에 의지하여 나타나는 정신은 대상에 대해 탐·진·치를 경험(J. H. Wood, 1979: 349)하게 한다. 그리고 정신의 이러한 기능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상에 이성적 측면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나타나는 정신은 선악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인 이성적 측면에서 명상수행을 통해 바르게 판단해야할 명상대상이 된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표 Ⅲ-2. 정신(mano)의 명상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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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쌍윳따니까야 ‘바라문 운나바의 경(Uṇṇābhabrāhmaṇasutta)’에서 붓다는 “시각능력, 청각능력, 후각능력, 미각능력, 촉각능력이다. 바라문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능력(indriya)은 범주(visaya)를 달리하고 대상(gocara)을 달리하며, 상호간의 범주와 대상을 경험하지 못한다. 이것은 정신(mano)을 의지처(paṭisaraṅa)로 하며, 정신이 그들의 범주와 대상을 경험하게(paccanubhoti) 된다.”(M. Leon Feer, 1989d: 218)라고 한다. 그래서 전오근은 각자 자신들만의 대상과 범주를 경험하며, 다른 대상과 범주를 경험하지 못하지만, 정신은 자신을 포함한 전오근의 대상과 범주까지도 경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눈은 보이는 것만 받아들이고, 귀는 들리는 것만 받아들이지만, 정신은 전오근과 자신의 대상과 범주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정신이 육근의 대상과 범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이 선악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인 이성적 측면에서 명상수행의 명상주체로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라문 운나바의 경’의 주석서인 사랏탑빠까시니에서 “정신의 의지처는 속행인 정신의 의지처이다. 정신은 실로 그러하다. 의문속행의[意門速行意, manodvarikajavana mano]는 오문속행의 또는 이것이 대상(gocara)과 범주(visaya)를 오염(rajjana)시킴에 의해서 경험한다(anubhoti).”(F. L. Woodward, 1977c: 245) 고 한다. 여기서 정신은 탐·진·치에 의해 대상을 찰라적으로 파악하는 의문속행의[意門速行意]를 말한다. 또한 맛지마니까야 ‘원한다면 경(Akaṅkheyya Sutta)’에서 “정신이 그들 각자의 감각대상과 범주를 경험한다.”(V. Trenckner, 1979: 295)라고 한다. 그리고 이의 주석서인 빠빤자수다니에서 의문속행의가 오문을 통해 들어온 그들 각각의 영역과 대상에 오염·싫어함·미혹함이라는 탐·진·치를 경험하게 한다고 한다.(J. H. Wood, 1979: 349) 또한 앙굿따라니까야 ‘선구의 경(Pathamapubbangamasutta)’에서 붓다는 정신이 정신적인 것들은 이끈다고 하며, 착하고 건전한 것들뿐만 아니라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도 이끈다고 한다.(REV. Richard Morris, 1961: 11) 이렇게 정신이 착하거나 건전한 것들, 그리고 악하거나 불건전한 것들을 이성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은 착하거나 건전한 것들을 이끌며,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소멸로 이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선악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인 이성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탐·진·치의 소멸을 통해 정신은 명상목적을 달성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이성적 측면에서 정신에 의존하여 나타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일어남에 의해 정신은 명상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전오근과 자신의 대상과 범주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정신은 명상주체가 된다. 또한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이끌어 이성적으로 탐·진·치의 소멸을 통해 해탈·열반의 길을 가게 하는 명상목적으로서도 정신은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따라서 정신은 마음[G]의 이성적 측면에서 명상수행의 명상대상과 명상주체 그리고 명상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2) 마음[citta]에 대한 용어의 분리성

심·의·식 중에서도 마음은 마음[G]의 정서적 측면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는 마음[G]에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네이버, 2020c) 정서적 기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양의 경’의 주석서인 사랏탑빠까시니는 다시 태어남의 순간에 첫 번째 의식을 존재지속심(bhavaṅgacitta)이라 한다.(F. L. Woodward, 1977b: 28) 또한 앙굿따라니까야 ‘빛나는 마음의 경(Dutiyapabhassaracittasutta)’에서 붓다는 수행자에게 “마음은 빛나는 것이고, 그 마음이 다가오는 번뇌로 오염 된다.”(REV. Richard Morris, 1961: 10)고 하여, 마음이 번뇌로 오염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의 주석서인 마노라타뿌라니는 “여기서 빛나는 것이란 밝고 청정한 것(paṇḍaraṁ parisuddhaṁ)을 말하고 마음은 잠재의식으로 이해되는 존재지속심(bhavaṅgacitta)을 말한다. ··· 중략 ··· 윤회 속에서 개인적인 삶에 연속성(ekasantati)을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정신적 과정을 말한다.”(전재성, 2013: 133)고 한다. 그래서 윤회 속에서 인간의 삶에 연속성[ekasantati]을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정신과정을 존재지속심이라고 한다. 이러한 존재지속심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관찰하는 심념처 수행에 대해 디가니까야(Dīha Nikāya) ‘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에서는 마음을 사띠하여, 관찰하고, 통찰해야할 대상으로 16가지 마음(T. W Rhys Davis, 1966: 299)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비담맛타상가하(Abhidhammatthasaṅgaha)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작용(cetasika)에 자만, 질투, 인색, 수치심, 마음의 편안함, 마음의 부드러움, 수치심 등이 있다고(Hammalawa Saddhatissa, 1989: 6) 한다. 또한 ‘분별의 경’에서 마음작용으로 즐거운 것, 유쾌한 것, 고통스러운 것, 불쾌한 것을 느낀다고 한다.(M. Leon Feer, 1989d: 209) 이와 같이 마음에 의해 마음[G]의 정서적 측면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마음 작용으로 나타나는 마음은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측면에서 명상수행을 통해 관찰해야할 명상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정준영(2015: 98)은 초기불교 명상에서 수행자는 원하는 대상으로 마음을 향하여[manasikāra, 作意], 그 대상을 사띠하고[sati], 그 대상을 분명히 알아차리는[sampajañña] 과정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의, 사띠, 분명한 앎은 명상수행에서 명상대상을 관찰하여, 해탈·열반의 길로 가게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마음의 정서적 측면을 통해 마음은 명상주체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

또한 맛지마니까야 ‘두려움과 공포 경(Bhayabherava Sutta)’에서 붓다는 “집중된 마음(samāhita citte)은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며, 번뇌가 없고, 번뇌가 소멸되며, 유연하고, 업을 감당할 수 있고, 안정되는, 번뇌가 소멸하는 지혜(āsavānaṃ khaya nāṇa)로 향하게 했습니다.”고 한다.(V. Trenckner, 1979: 23) 그리고 이의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에서 여기서 “집중된 마음은 위빠사나의 기초가 되는 제4선의 마음[vipassanāpādaka catutthajjhānacitta]이라고 한다.”고 하여(J. H. Wood, 1977: 126), 명상수행을 통해 집중 된 마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원한다면 경’에서 “번뇌가 소멸되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심해탈]과 통찰지혜에 의한 해탈[혜해탈]을 위해 견해와 원리에 대해 스스로 수승한 지혜를 구현하고, 도달하여, 머물기를[누진통] 원한다면, 계를 실현하고 내적으로 마음의 사마타(cetosamatha)에 전념하고, 선을 무시하지 않으며(anirākatajjhāna), 위빠사나를 구족하고 빈집(suññagāra)에 머물기를 실천해야 한다.”(V. Trenckner, 1979: 35-36)고 한다. 그래서 명상수행인 사마타명상(집중명상)과 위빠사나명상(통찰명상)을 통해 심해탈과 누진통, 그리고 혜해탈에 이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은 명상수행을 통해 집중된 마음과 심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마음은 이렇게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변화를 통해 명상목적을 달성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은 정서적 측면에서 통찰해야할 16가지 마음으로 명상대상이 된다. 그리고 작의와 사띠, 그리고 분명한 앎으로의 선한마음작용을 일으키는 명상주체가 되고, 이를 통해 마음의 청정과 심해탈을 얻어 심청정을 증득하게 되는 명상목적으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따라서 마음은 마음[G]의 정서적 측면에서 명상수행의 명상대상이 되며, 명상주체, 그리고 명상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3) 의식(viññāṇa)에 대한 용어의 분리성

심·의·식 중에서도 의식은 마음[G]의 인식적 측면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는 마음[G]에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하는(네이버, 2020a) 인식적 기능을 하게 된다. ‘자만을 여읨의 경’에서 “의식이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 중략 ··· 그 모든 의식은 이와 같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하여 집착 없이 해탈한다.”(전재성, 2014: 538)고 한다. 그래서 명상수행을 통해 의식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교리문답의 긴경’에서는 “통찰지와 의식이라는 이 법들은 결합(saṃsaṭṭha)되어 있으며, 분리되어 있지 않지만, 통찰지는 닦아야 하고 의식은 완전히 알아야(pariñña) 합니다.”(V. Trenckner, 1979: 293)라고 한다. 또한 사성제에서 고의 대상인 의식을 명상수행을 통해 철저히 알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V. Trenckner, 1979: 53) 이렇게 통찰지혜와 결합하여 발생하는 의식의 인식작용을 통해 의식을 철저히 앎으로써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의식은 명상수행을 통해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하는 인식적 측면에서 명상수행을 통해 철저히 알아야 할 명상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쌍윳따니까야 ‘희생되는 것에 대한 경(Khajjanīyasutta)’의 주석서인 사랏탑빠까시니에서 의식의 특별한 특징은 인식하여 알아채고(sañjānāti), 식별하며(vijānāti), 분명히 앎(pajānāti)이라고 한다.(F. L. Woodward, 1977b: 293) 이러한 알아채고 식별하여 분명히 아는 작용이 있는 의식은 통찰지혜(慧, paññā)와 연결된다. 그리고 ‘교리문답의 긴 경’의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는 의식은 “대상을 알아채며(janati), 무상‧고‧무아인 특징을 통찰[lakkhaṇapaṭivedha]할 수 있다.”(J. H. Wood, 1979: 343)고 하여, 의식이 통찰작용을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의식은 명상수행에서 명상대상을 인식하고, 식별하며, 분명한 앎으로서 통찰작용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의식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하는 인식적 측면에서 명상주체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또한 ‘종자의 경’에서 의식이 바탕, 성장과 현행을 못하면 해탈되며, 해탈되면 안정되고, 안정되면 만족하여 동요하지 않으며, 동요하지 않으면 열반을 성취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음을 분명히 안다고 한다.(M. Leon Feer, 1989c: 55) 따라서 의식은 명상수행에서 인식적 작용을 통한 통찰을 통해 통찰지혜와 결합하여, 해탈·열반을 성취하게 된다. 그래서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하는 인식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명상수행을 통해 해탈·열반을 성취하게 되며, 이러한 명상목적을 달성하는데 의식은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의식은 인식적 측면에서 삼법인과 사성제의 대상이 되며, 이를 철저히 알아야 하는 명상대상이 된다. 그리고 인식하며, 통찰작용을 하게 되는 명상주체가 된다. 이를 통해 의식이 바탕을 소멸하고, 통찰지혜와 결합하여 열반을 성취하게 되는 명상목적으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의식은 마음[G]의 인식적 측면을 나타내며, 명상수행의 명상대상과 명상주체 그리고 명상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심·의·식 용어의 분리성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표 Ⅲ-3. 명상수행에서 심·의·식 용어의 분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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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선 정신은 마음[G]의 이성적 측면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정신을 포함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일어남을 관찰하게 된다. 또한 의문속행의(manodvarikajavanamano)가 작용되며, 육근의 대상과 범주까지 이해하게 되고, 이를 통한 탐·진·치의 제거로 해탈·열반의 길을 가게 된다. 두 번째로 마음은 마음[G]의 정서적 측면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16가지 마음과 마음작용의 일어남을 관찰하게 된다. 또한 존재지속심(bhavaṅgacitta)이 작용되며, 작의, 사띠 등의 마음작용으로 마음의 청정과 심해탈을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 의식은 마음[G]의 인식적 측면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의식에 대한 삼법인과 사성제의 일어남을 관찰하게 된다. 또한 재생연결식(paṭisandhiviññāṇa)이 작용되며, 의식의 인식과 통찰작용으로 통찰지혜와 결합하여 깨달음을 증득하게 된다. 이렇게 명상수행에서 심·의·식은 기능상으로 명상수행의 명상대상과 명상주체, 그리고 명상목적이 되는 용어의 분리성을 갖게 된다.

3. 심·의·식의 상호 연관관계

심·의·식은 뜻의 동의성과 기능상의 분리성이 있으며, 동일한 마음[G] 영역에서 상호간에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게 된다. 이러한 심·의·식의 상호 연관관계를 심·의·식의 기능 중에서도 중요한 작용인 명상주체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먼저 정신에 대해, 이필원(2014: 89)은 “의식은 다시 두 가지로 이해된다. 즉 마음인 의근이 법경(法境:관념적인 대상)을 대상으로 하여 형성된 의식과, 전오식(前五識: 眼·耳·鼻·舌·身識)을 통괄하는 의식이다. 의근도 두 가지로 이해되는데, 첫째는 법경을 대상으로 의식을 형성하는 의근과 전오식과 의식 사이에서 전오식의 내용을 의식이 종합적으로 판단을 하는데 작용하는 의근이다.”라고 한다. 그래서 의근[정신의 근]을 두 가지로 이해하며, 하나는 법경을 대상으로 의식[MV]을 형성하는 의근이고, 하나는 전오식의 내용을 의식[MV]이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작용하는 의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대해, 정준영(2015: 98)은 “이들은 마음챙김과 주의 그리고 알아차림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불교의 수행은 다르다. 수행자는 원하는 대상으로 마음을 향하여(manasikāra, 주의), 그 대상을 주시하고(sati), 그 대상을 분명히 알아차리는(sampajañña) 과정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은 명상주체로서 명상대상에 마음을 향하고, 그 대상을 사띠하여, 분명히 알아차리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의식에 대해, ‘희생되는 것에 대한 경’의 주석서인 사랏탑빠까시니에서 “이 세상에 탁월한 의식의 특징을 남기는 의식의 특별한 특징(lakkhaṇā)을 이렇게 나누어서 보여준다. ··· 중략 ··· 이것은 이제 지각, 의식, 지혜를 분명한 상태로 식별(sallakkhaṇā)하는 것은 인식하여 알아채고(sañjānāti), 식별하며(vijānāti), 분명히 아는 것이다.(pajānāti)”(F. L. Woodward, 1977b: 293)라고 한다. 그래서 의식은 명상주체로서 명상대상을 인식하여 알아채고, 식별하며, 분명히 알게 됨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소마랏네는 의식과 정신은 같은 종류로 분류되며, 정신은 의식의 한 종류이고, 사람의 생각과 관련된 지각 능력의 한 부분이며, 감각기관이라고 한다. 또한 정신과 의식의 모든 기능이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G. A. Somaratne, 2005: 185) 그래서 심·의·식은 명상수행을 통해 이들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와 같이 심·의·식은 명상수행의 명상주체로서 서로 상호간에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심·의·식이 명상주체로서 작용하게 되는 상호연관 관계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표 Ⅲ-4. 명상수행에서 심·의·식의 상호연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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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명상대상에 대해 의근은 근·경·식 삼사화합에 의해 발생되는 전오식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되며, 이때 정신은 육근의 대상과 범주까지 종합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때 마음은 대상에 마음을 향하고[작의], 사띠하게 되며, 분명한 앎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의식(識)은 대상을 알아채고, 식별하며, 분명히 아는 작용을 통해 통찰지혜와 결합하게 되며, 깨달음을 얻어 해탈·열반을 증득하게 된다. 따라서 명상수행에서 심·의·식이 모두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내적 기제로 구분되어 상호 보완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동의성을 띄고 있으면서도 기능상에 분리성이 있는 심·의·식의 상호 연관관계를 동등한 관계인 수평적이며, 보완적인 관계로 보았다.

Ⅳ. 심·의·식의 다원적 마음치유

심·의·식은 마음[G]의 동일한 영역에서, 상호간에 수평적이며,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 심·의·식은 서로 간에 밀접한 연관관계를 형성하는 동의분리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명상수행을 통해 마음[G]은 정서적 측면·이성적 측면·인식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다원적인 치유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심·의·식의 동의분리성에 의한 다원적 마음[G]치유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심·의·식의 동의분리성

심·의·식은 뜻에 동의성을 띄면서도, 기능상으로 분리성을 갖게 되며, 명상수행의 흐름에 동의분리성의 작용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심·의·식이 명상수행의 흐름에 작용하게 되는 동의분리성에 대해 살펴보겠다. 우선 의식에 대해, 깔루빠하나는 명색(namarupa)과 의식(viññāṇa), 그리고 의식의 흐름(viññānasota) 사이에 상호작용의 기초상태에서 인간존재는 연속성을 갖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D. J. Kalupahana, 1989: 239) 이렇게 의식은 마음[G] 전체에 흐름을 갖게 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의 흐름에도 연속성을 갖게 한다. 그래서 의식은 심·의·식을 통한 명상수행의 흐름에 연속성을 가져오게 하며, 이를 통해 의식은 마음[G]에 인식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상호연관성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는 의식에 동의적이면서도 분리성을 갖게 하는 동의분리성을 띄게 한다.

그리고 정신에 대해, 소마랏네는 “정신은 전오근(다른 감각기관)이 의지하는 정신이다. 마음 챙김은 정신의 의지로 언급된다. 아마도 정신이 그 마음과 의식 그리고 전오근 안에 흐르는 감각에 각각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마음 챙김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언급되는 듯하다. 정신은 전오근과 자신의 대상과 범주까지도 이해할 수 있으며, 전오근에 대한 지식을 즐기는 두뇌의 중심 역할을 한다.”(G. A. Somaratne, 2005: 186)고 한다. 그래서 전오근이 의지하는 것은 정신이며, 정신이 마음과 의식 안에 흐르는 감각에 각각 반응하며, 육근의 대상과 범주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정신은 심·의·식을 통한 명상수행의 흐름에 이해를 가져오게 하며, 이를 통해 정신은 마음[G]에 이성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상호연관성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는 정신에 동의적이면서도 분리성을 갖게 하는 동의분리성을 띄게 한다.

또한 마음에 대해, 디가니까야 ‘합송의 경(Saṅgīti sutta)’에서 사리뿟따는 “수행승이 욕망이 떠나지 않은 탐욕이 있고 … 중략 … 그의 마음은 열중(ātappa)하고, 전념(anuyoga)하며, 유지(sātacca)하고, 정근(padhāna)하는 것으로 향하지(namati) 못합니다.”(J. Estlin Carpenter, 1976: 238)라고 하여, 명상수행에서 마음은 열중·전념·유지·정근의 특성을 갖고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디가니까야 ‘수행자의 삶의 결실에 대한 경(Sāmaññaphala sutta)’에서 오장애의 제거로 마음을 정화하며, 선정에 들고, 마음이 삼매에 들어 육신통을 계발하며, 욕망의 번뇌(kāmāsavā), 존재의 번뇌(bhavāsavā), 무명의 번뇌(avijjāsavā)에서 마음이 해탈된다(vimuccati)고 하여(T.W. Rhys Davids, 1975: 71-84), 마음의 정화와 삼매의 계발로 해탈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불사의 경’에서도 붓다는 “비구여 이것은 몸에서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이는 분명히 알아채고(sampajāna) 사띠를 확립하며, 세계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 … 중략 … 비구여 이렇게 네 가지 사띠의 토대(satipaṭṭhāna)가 실로 확립된 마음(supatiṭṭhitacitta)으로 살아라. 그래서 실로 불사(amata)를 놓치지 마라.”(M. Leon Feer, 1989d: 184)고 한다. 그래서 마음을 포함한 네 가지 사띠의 토대를 잘 정립하여 마음의 정화와 삼매의 계발로 해탈을 이루게 되며, 이를 통해 불사를 증득하게 된다. 또한 정준영(2010: 43)은 “심해탈(心解脫)은 사마타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집중과 관련이 있으며 이를 통해 탐욕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명상수행에 의한 변화를 통해 마음은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은 심·의·식을 통한 명상수행의 흐름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며, 이를 통해 마음은 마음[G]에 정서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상호연관성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는 마음에 동의적이면서도 분리성을 갖게 하는 동의분리성을 띄게 한다.

그리고 ‘배움이 없는 자의 경’은 “비구여 이것은 마음으로 정신으로 의식으로 불리어지며, 거기에 배우지 못한 범부는 싫어하여 떠나지 않으며(nālaṃ),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해탈할 수 없다. ··· 중략 ··· 비구여 이것은 마음으로 정신으로 의식으로 불리어지며, 그것은 밤낮으로 다르게(añña) 되어 발생되고(uppajjati), 다르게 되어 소멸됩니다(nirujjhati).”(M. Leon Feer, 1989b: 94-95)라고 한다. 여기에서 ‘마음이나 정신 내지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라 하여, 심·의·식에 대한 구별을 특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의 변화를 통해 해탈에 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의·식이 동일한 마음[G] 영역에서 작용하게 되며, 이들의 동의분리성으로 인해 명상수행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심·의·식의 동의분리성에 의한 중심적인 기능에 의해, 의식은 명상수행의 흐름에 연속성을 갖게 하며, 정신은 명상수행의 흐름에 이해를 가져오게 하고, 마음은 명상수행의 흐름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중심 기능을 하게 된다. 다만 이들은 하나의 정신 영역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이들을 특정하여 구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심·의·식의 동의분리성에 의한 마음[G] 작용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표 Ⅳ-1. 동의분리성에 의한 심·의·식의 중요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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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심·의·식은 동일한 마음[G] 영역에서 작용하며, 명상수행의 흐름에 영향을 가져오는 동의분리성을 갖게 된다.

2. 심·의·식의 다원적 마음치유

심·의·식은 명상수행에서 마음[G]에 흐름을 유지하는 동의분리성을 갖게 하며, 이들은 수평적이며, 보완적인 상호 연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에 대해 미산(2009: 39)은 “심으로 옮긴 찟따는 마음 자체를 의미하고, 의로 옮긴 마노는 주로 인식작용이 나타나는 기능이나 감각장소의 뜻으로 쓰인다. 또한 인식기관과 인식대상이 만날 때 생기는 윈냐나는 식으로 옮겼으며 눈·귀·코·혀·몸·뜻이 빛·소리·냄새·맛·감촉·법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여, 심·의·식이 마음[G]에 형성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종욱(2009: 9)은 “심이 마음 자체를 의미 한다면, 의는 인식작용이 나타나는 기능이나 장소를 뜻하고, 식은 인식기관과 인식대상이 만나 생기는 앎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분되기도 한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심·의·식은 이러한 기능상의 차이로 인해 마음[G]에 다원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G]은 계·정·혜 삼학에 의한 팔정도수행으로 마음에 의해 정서적 측면으로 치유되며, 정신에 의해 이성적 측면으로 치유되고, 의식에 의해 인식적 측면으로 치유되는(남일희, 2020: 189) 다원적인 마음[G]치유를 하게 된다.

이에 대해 쌍윳따니까야 ‘고행의 경(Tapokammasutta)’에서 붓다는 “계행과 삼매와 지혜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닦아서 나는 위없는 청정한 삶에 이르렀으니,”라고(전재성, 2014: 141) 설명하는데, 이는 계행에 의해 청정의 길을 가고, 삼매에 의해 청정의 길을 가게 되며, 지혜에 의해 청정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상수행을 통해 마음[G]은 계청정·심청정·혜청정의 길을 가게 된다. 또한 아비담맛타상가하에서 “네 가지 청정한 계가 계의 청정이며, 근접삼매와 본삼매인 이러한 두 가지 삼매를 마음의 청정 이라고 한다.”(Hammalawa Saddhatissa, 1989: 48)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에서 “계청정은 심청정을 위해서입니다. 심청정은 견청정을 위해서입니다.”(대림, 2016a: 80)라고 하여, 명상수행을 통해 얻게 되는 계청정과 심청정 그리고 견청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한 손혜진(2007: 19)은 “여기서 말하는 청정이란, 모든 더러움이 없어진 지극히 청정한 열반을 뜻하며 칠청정은 계청정·심청정, 그리고 다섯 가지 혜청정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명상수행을 통해 계청정·심청정·혜청정을 증득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계·정·혜 삼학과 팔정도 수행을 연결하면 다음과 같다. 팔정도에서 계학은 올바른 언어(정어)·올바른 행위(정업)·올바른 생활(정명)에 해당되며, 정학은 올바른 정진(정정진)·올바른 사띠(정념)·올바른 집중(정정) 해당되고, 혜학은 올바른 견해(정견)·올바른 사유(정사유)에 해당된다.(V. Trenckner, 1979: 301)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심·의·식에 의해 마음[G]은 다원적으로 치유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정신은 착하고 건전한 것뿐만이 아니라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도 이끌며(REV. Richard Morris, 1961: 11), 이를 통해 선악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인 이성적 기능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계학을 중심으로 한 명상수행을 통해 탐·진·치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정신을 밝게 치유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미산(2009: 89)은 “아라한의 마음처럼 무탐·무진·무치 상태의 마음은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탐·진·치에서 벗어난 마음을 밝은 마음이라고 한다. 이때 정신은 인간의 삶에서 건전한 것들을 이끌고, 불건전한 것들을 치유하게 된다. 따라서 삼학 중에서 계학인 팔정도수행의 올바른 언어·올바른 생활·올바른 행동을 중심으로 한 명상수행을 통해 정신은 밝게 치유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계청정이 확립되는 길을 가게 된다. 이와 같이 계학을 중심으로 한 치유과정을 통해 마음[G]은 밝게 치유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마음의 작용은 락, 고, 쾌, 불쾌 등을 느끼며(M. Leon Feer, 1989d: 209), 이를 통해 마음에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작용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정학을 중심으로 한 명상수행을 통한 마음의 정화로 정서적으로 마음을 청정하게 치유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삼학 중에서 정학인 팔정도수행의 올바른 정진·올바른 사띠·올바른 집중을 중심으로 한 명상수행을 통해 마음은 청정하게 치유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심청정이 확립되는 길을 가게 된다. 이와 같이 정학을 중심으로 한 치유과정을 통해 마음[G]은 청정하게 치유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의식은 인식하여 알아채고, 식별하며, 분명한 앎을 가져오게(F. L. Woodward, 1977b: 293)하며, 이를 통해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하는 인식적 작용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혜학을 중심으로 한 명상수행을 통해 통찰지혜와 결합하여, 인식적으로 의식에 괴로움을 치유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의식은 통찰지혜와 결합하게 되고, 이를 통한 의식의 변화로 인식적으로 괴로움은 소멸을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삼학 중에서 혜학인 팔정도수행의 올바른 견해·올바른 사유를 중심으로 한 명상수행을 통해 의식에 괴로움은 치유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혜청정이 확립되는 길을 가게 된다. 이와 같이 혜학을 중심으로 한 치유과정을 통해 마음[G]에 괴로움이 치유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심·의·식의 다원적 마음[G]치유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Ⅳ-2. 심·의·식의 다원적 마음[G]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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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정신은 선악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인 이성적 측면을 통해 명상수행에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계학인 올바른 언어·올바른 행위·올바른 생활을 통한 명상수행으로 계청정이 확립되며, 이는 정신에 밝음을 가져온다. 또한 마음은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측면을 통해 명상수행에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정학인 올바른 정진·올바른 사띠·올바른 집중을 통한 명상수행으로 심청정이 확립되며, 이는 마음에 청정을 가져온다. 그리고 의식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하는 인식적 측면을 통해 명상수행에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혜학인 올바른 견해·올바른 사유를 통한 명상수행으로 혜청정이 확립되며, 이는 의식에 괴로움의 소멸을 가져온다. 이렇게 계청정·심청정·혜청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을 팔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한 마음[G]치유는 지관수행인 사마타명상(집중명상)과 위빠사나 명상(통찰명상)을 통해 증득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계청정·심청정·혜청정은 상호간에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게 되며, 이를 통해 마음은 고요해지고, 정신은 밝아지며, 의식에 괴로움이 소멸되는 다원적인 마음[G]치유를 얻게 된다.

Ⅴ. 나오는 말

동일한 마음[G]영역에서 발생하게 되는 심·의·식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통해 명상수행에서 이들의 동의분리성 및 다원적 마음치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심·의·식의 의미, 뜻의 동의성 및 용어의 분리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심·의·식이 문맥에 따라 안다는 것에 대한 뜻으로 사용될 때는 동의성을 띄며, 이들의 심체를 같다고 보았다. 또한 명상수행에서는 심에서 의와 식을 구분하는 분리성의 특징으로 인해 심·의·식은 각각 마음[G]의 정서적 측면·이성적 측면·인식적 측면을 중심으로 명상수행의 명상대상이 되고, 명상주체가 되며, 명상목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심·의·식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이들이 동일한 마음[G]영역에서 작용하게 되며, 서로 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면서 명상수행에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명상수행에서 심·의·식이 모두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내적 기제로 구분되며, 상호간에 수평적이고,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명상수행에서 이들이 작용하는 동의분리성으로 인해 의식은 명상수행의 흐름에 연속성을 가져오며, 정신은 명상수행의 흐름에 이해를 가져오고, 마음은 명상수행의 흐름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심·의·식은 동일한 마음영역에서 작용하며, 팔정도수행을 통해 계·정·혜 삼학으로 마음[G]을 다원적으로 치유하게 된다. 이때 정신은 마음[G]의 이성적 측면에 작용하며, 계학인 올바른 언어·올바른 행위·올바른 생활을 통한 명상수행으로 계청정이 확립되고, 이는 정신에 밝음을 가져온다. 또한 마음은 마음[G]의 정서적 측면에 작용하며, 정학인 올바른 정진·올바른 사띠·올바른 집중을 통한 명상수행으로 심청정이 확립되고, 이는 마음에 청정을 가져온다. 그리고 의식은 마음[G]의 인식적 측면에 작용하며, 혜학인 올바른 견해·올바른 사유를 통한 명상수행으로 혜청정이 확립되고, 이는 의식에 괴로움의 소멸을 가져온다. 이로써 마음[G]은 해탈·열반에 들어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불사를 증득하게 된다. 따라서 사마타명상(집중명상)과 위빠사나 명상(통찰명상)에 의한 팔정도 수행으로 마음은 청정을 가져오고, 정신은 밝음을 가져 오며, 의식에 괴로움이 소멸되는 다원적인 마음[G]치유를 얻게 된다.

Footnote

1)  오온(五蘊)은 물질(色, rūpa)·느낌(受, vedanā)·지각(想, saññā)·의도(行, saṅkhārā)·의식(識, viññāṇa)으로 구성되며, 이는 색·수·상·행·식을 말하고, 이를 다시 명색으로 구분하면 명인 마음은 수·상·행·식이 된다.

2)  명색에서 명인 마음을 다시 마음(心, citta)·정신( 意, mano)·의식(識, viññāṇa)으로 구분하며, 이는 심·의·식을 말한다.

3)  PED: The Pali Text Society's Pali-English dictionary의 약어

4)  네가지 자양(cattāro āhāra)은 단식(段食, kabalīkāra-āhāra), 촉식(觸食, phassa-āhāra), 의사식 (意思食, manosañcetanā-āhāra), 식식(識食, viññāṇa-āhāra)을 말한다.

5)  이에 대해 본장에서는 정신의 작용을 통한 명상수행을 통해 탐·진·치에서 벗어나 밝은 마음을 얻는다고 하여, 이를 정신을 밝게 치유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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