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부정관(不淨觀; aśubha-bhāvanā)은 붓다 당대에 실행되었던 수행법이다. 붓다시대에 실행되었던 보편적 수행법을 꼽자면 4념처관을 들 수 있다. 신(身)·수(受)·심(心)·법(法)의 네 가지 염처관 중 신념처 수행의 대표적인 것이 부정관이며, 몸을 중심으로 하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정관은 입출식관(入出息觀; anāpāna-sati)으로 대표되는 수식관(數息觀)과 더불어 초기불교를 대표하는 신념처 수행의 입문 수행법이라고 간주되어 왔다.
부정관이 수식관으로 대치된 이유는 부정관을 열심히 닦은 비구들의 자살소동과 연관되어 있다. 초기문헌은 부정관을 닦던 비구들이 몸의 현상을 경험하고, 몸은 덧없고 벗어나야 할 대상으로 오해하여 스스로 또는 타의에 의해서 자살한 사건들을 기록한다. 이 사건으로 많은 비구들이 죽어갔고 이를 알게 된 붓다는 부정관 대신 열반에 이르는 새로운 수행법으로 입출식관을 시설한다. 이렇듯 붓다 시대에 출가자 중심으로 수행되던 부정관은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지만 그 행법은 초기경전에 그대로 남아 전승되었으며, 아비달마와 대승불교에 다양한 형태로 면면히 전수된다.
초기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부정관법은 여러 장기와 피부 뼈에 이르기까지 몸의 전반을 관찰하는 것과 외부에 버려진 시신의 섞고 부패한 과정을 관찰하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부정관은 내신(內身) 부정관, 외부의 시신을 보고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외신(外身) 부정관이라고 한다. 내신 부정관은 대승불교의 부정관으로 전승된 측면이 강하고 외신 부정관은 아비달마 부정관의 전승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부정관은 붓다 당대에 적극적으로 실행되다가 큰 폐단도 낳은 수행법이었지만, 그 이름과 실수법은 후대에도 전승되었던 것이다. 특히 유식의 유가사지론은 초기불교의 부정관을 기본 모델로 삼고 여러 가지 부정관법을 시설한다. 유가사지론은 다른 교문(敎門)과의 유기적 관계와 의식의 확장 측면을 중시하면서 수행법을 시설한다. 일정한 기본 패턴의 수행법이라고 할지라도 여러 관점과 연관된 수행법을 시설한다. 하나의 수행법이 수많은 교법과 연결됨을 강조한 것이다. 부정관 수행법도 예외가 아니다.
본고는 초기 부정관법의 기본 형태가 유가지지론에 이르러 내용과 실수법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유가사지론은 동일한 수행법이라고 할지라도 그 수행법을 접하는 대상이나 또는 의식의 확장 수준을 따라서, 또는 교법과의 연관성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로 시설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비달마와 대승의 여러 경론들도 부정관을 기술하고 있지만 유가사지론 만큼 부정관의 종류와 그 구체적 내용을 자세하게 다룬 경론은 없다. 유가사지론은 부정관의 변형과 확대 가능성을 가장 선명하면서 구체적으로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유가사지론의 교문이 방대하고 하나의 법을 설할 때 게송으로 전체를 요약하고 세부 항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특징을 가진 까닭에 세세한 문헌적 연구와 내용 소개는 너무 번잡해지기 때문에 한역 유가사지론의 「성문지」를 중심으로 전반적 전개양상에만 주목하고자 한다.
부정관 수행법에 대한 국내외의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었다. 부정관의 비구자살 사건은 수많은 저널과 잡지에서 꾸준히 회자되었다. 근래에 불교 수행법과 명상이 부각되면서 부정관 수행법이 다시금 조망되기 시작하였다. 국내 부정관 연구 흐름을 살펴보면 명상의 도입을 위한 연구2), 여인의 부정(不淨)에 대한 새로운 경전설에 대한 연구3)가 있고, 아함의 부정관과 번뇌의 관계4), 부정관과 몸의 관계성이 조망되었으며5), 초기 경전과 율전에 나타난 부정관으로 인한 비구들의 자살 일화의 내용들이 연구되었다6). 무엇보다도 부정관은 오정심관 수행법의 일환으로 활발하게 연구되었다7).
Ⅱ. 유가사지론 ‘성문지’의 부정관 시설과정
1. 부정관의 수행의 주체
유가사지론의 ‘성문지’는 크게 네 가지의 과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가지 과단은 종성지(種姓地), 삭취취지(數取趣地), 안립지(安立地), 세출세간지(世出世間地)로 구성되어 있다. ‘성문지’ 종성지 초두에 기술된 자성 부분은 모든 보특가8)라는 열반법을 체득할 수 있는 종성을 갖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9). 유가사지론의 종성은 종자(種子)10)의 의미로 모든 보특가라, 즉 중생은 열반에 이르는 뛰어난 인연을 갖춘 자[勝緣]와 열등한 인연을 갖춘 자[劣緣]가 있다. 수행자는 열반에 이를 수 있는 종성의 성품이 있지만 현상적으로는 두 종류의 차별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사지론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무엇을 승연(勝緣)이라고 하는가?
정법을 더욱 키우는 다른 이의 (진리를 설하는) 음성과 안의 여리작의를 말한다.
무엇을 열연(劣緣)이라고 하는가?
이 열연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스스로 원만한 것, 다른 사람에 의해서 원만한 것, 원만, 선법의 욕구, 바른 출가, 계율의, 근율의, 음식의 양을 아는 것, 아침저녁으로 항상 부지런히 깨어있으면서 유가를 닦는 것, 바로 알아차리면서 머무르는 것, 멀리 떨어져 있음을 즐기는 것, 오개 번뇌를 청정히 하는 것, 삼마지를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11).
이와 같이 유가사지론은 깨달을 수 있는 불성의 성품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뛰어난 수행인연을 갖춘 중생과 열등한 수행인연을 갖춘 중생의 두 가지의 부류가 있다고 한다. 뛰어난 인연을 갖춘 중생은 붓다와 같은 성음(聖音)을 들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거나, 스스로 이치대로 작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고, 열등한 인연을 갖춘 중생은 위 인용문에서 제시한 12가지 행에 의지하게 된다고 한다.
종성지 다음에 기술되는 삭취취지12)는 보특가라 중생의 수행하는 모습, 다시 말해 수행주체의 다양함을 밝히는 대목이다. 유가사지론은 이미 깨달음을 잉태한 중생의 모습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중생의 모습을 종성지에서 밝히고, 그 다음으로 열반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 윤회계로 떠도는 중생의 모습을 삭취취지에서 중점적으로 다룬다.
삭취취지는 세속을 벗어나길[出離] 갈망하는 중생의 종류를 28가지로 나누고 각각의 특징을 밝힌다. 출리에 이르는 보특가라는 둔근자로부터 구분해탈자(俱分解脫者)까지 총 28종이 있다고 밝히며, 근(根)·중(衆)·행(行)·원(願)·행적(行迹)·도과(道果)·가행(加行)·정(定)·생(生)·퇴불퇴(退不退)·장(障)의 차별에 의한 여러 종류의 보특가라의 특징을 낱낱이 기술한다13).
근의 차별은 수행할 때 근기가 둔한 자와 예리한 자를 의미하며, 중은 비구·비구니·식차마나에 소속된 무리를 의미하며, 행은 탐·진·치·만 등의 치우친 번뇌 정도에 따른 중생 분류를 의미하며, 원은 성문·독각·대승에 대한 서원 차별의 분류를 의미한다. 행적은 둔근자와 이근자가 수행을 할 때 선정을 통과하는 정도를 의미하는데, 유가사지론은 고지통(苦遲通)과 고속통(苦速通)과 낙지통(樂遲通)과 낙속통(樂速通)14)이 있다고 한다15). 고지통은 근본정려를 얻지 못한 둔근의 보특가라를 의미하고, 고속통은 근본정려를 얻지 못한 이근의 보특가라를, 낙지통은 근본정려를 얻은 둔근의 보특가라를, 낙속통은 근본정려를 얻은 이근의 보특가라를 의미한다16). 도과는 4향4과를 의미하며, 가행은 수신행(隨身行)과 수법행(隨法行)을 의미하며, 정은 신증(身證)의 단계에 이른 수행자가 다음 단계로 8해탈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생은 극칠반유, 가가, 일간, 중반열반, 생반열반, 무행반열반, 유행반열반 및 상류의 보특가라를 말한다17). 퇴불퇴에 대하여 유가사지론은“퇴에 의하기 때문에 시해탈아라한을 건립하는 것이며, 그는 현법락주에서 물러날 수가 있다. 불퇴에 의하기 때문에 부동법의 아라한을 건립하는 것이며, 그는 현법락주에서 결정코 물러나는 일이 없다.”18)라고 기술한다. 장은 혜해탈과 구분해탈의 아라한을 말한다. 혜해탈의 아라한은 이미 번뇌장을 해탈하였으나 아직까지 정장(定障)을 해탈하지 않은 것이며, 구분해탈의 아라한은 이미 번뇌장을 해탈하고 정장을 해탈한 것이기 때문에 구분해탈이라고 설한다19). 출리를 원하는 28종의 중생의 종류를 유가사지론은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보특가라의 품류의 차별에는 28가지가 있다.
무엇을 28이라고 하는가?
둔근자, 이근자, 탐증상자, 진증상자, 치증상자, 만증상자, 심사증상자, 득평등자, 박진성자, 행향자, 주과자, 수신행자, 수법행자, 신승해자, 견지자, 신증자, 극칠반유, 자가가자, 일간자,중반열반자, 생반열반자, 무행반열반자, 유행반열반자, 상류자, 시해탈자, 부동법자, 혜해탈자구분해탈자를 말한다20).
유가사지론은 세속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수행자를 28가지 나누고 하나하나 수행자의 면모를 기술한다. 이 중 탐증상자, 진증상자, 치증상자, 만증상자, 심사증상자가 오정심관 각각의 수행에 배대된다. 여기서 증상이라는 것은 치성하다는 의미로 탐욕일 경우는 탐욕이 치성한 것을 의미한다.
중생에게는 많은 부류의 수행자와 그 수행자가 취하는 수행법에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유가사지론은 수행에 입문한 수행자 그룹을 28가지로 나누고 큰 범주에서 둔근자와 이근자로 나누고 탐·진·치·만·심사 중 치우친 번뇌 정도를 기준으로 하여 수행자를 분류하고, 진행되어가는 수행단계에 따라서 상위자를 나열한다.
이 28종의 수행자 중 부정관과 관계되는 보특가라는 탐증상자에 배대하는데, 유가사지론은 이 보특가라에 대하여 다음과 기술한다.
무엇을 탐증상의 보특가라라고 하는가?
어떤 보특가라가 앞선 여생(餘生) 중에 탐번뇌를 이미 행했고 이미 익혔고 이미 자주 수습하여 이러한 인연에 의해서 지금 이생에서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맹리한 탐욕이 있고 긴 시간 동안 탐이 있는 것을 말하니, 이를 탐증상의 보특가라라고 한다21).
위 문장을 보면 탐욕이 치성한 탐증상자는 윤회 도중에 탐욕을 많이 행했던 중생이라고 정의한다. 이미 타고난 성품이 탐욕이 강한 경우를 탐증상의 보특가라라고 하는 것을 보면 선천적인 탐욕의 기질을 유가사지론은 인정한 셈이다. 이런 탐욕의 기질이 강한 수행자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한가? 유가사지론은 탐증상자의 구체적 모습을 상세하게 기술한다.
문: 탐행의 보특가라는 어떤 모습이 있는 줄 알아야만 하는가?
답: 탐욕을 행하는 보특가라는 여러 아주 작은 애착할 만한 일에 대해서도 오히려 매우 심하고 두터운 최고의 탐욕의 번뇌 얽힘을 일으킬 수 있는데, 어찌 하물며 중간과 낮은 경계에 있어서랴! 또한 이 탐욕의 번뇌 얽힘이 몸 가운데에 머물러 있으면서 오랫동안 경과하며 상속하고 오랜 시간동안 따라다니면서 계박한다. 탐욕의 번뇌 얽힘 때문에 제어 가능한 애착할 만한 대상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 애착하는 대상에 대하여 감각기관들은 기뻐하고 감각기관은 강건하지 못하고, 감각기관은 껄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감각기관은 거칠게 여기지 않는다. 근본 본성은 좋아하지 않는데도 악한 마음과 말로서 남을 괴롭힌다. 멀리 벗어나기도 어렵게 하고 싫어하기도 어렵게 하여 승해의 마음을 나약하게 하여 일상의 업이 견고하게 되고 일상의 업이 고착화된다. 금지된 계율이 굳어져 있고 금계가 고착화되어 능히 참고 능히 받는다. 생활도구에 대해서 본성이 지나치게 물들어서 깊이 귀하게 여기며 크게 기뻐하고 많이 기뻐하면서 (대상을 싫어하여) 찡그리는 얼굴표정은 전혀 없고 펴진 얼굴로써 편안하게 보며 웃음을 머금고서 먼저 말을 하나니, 이와 같은 등의 종류들이 바로 탐욕을 행하는 자의 모습이라고 하는 줄 알아야만 한다22).
위의 내용을 살펴보면 탐욕이 치성한 탐증상자는 작은 경계에서도 최상의 탐욕번뇌가 일어남을 알 수 있고, 탐욕번뇌는 몸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유지되고 오랫동안 작용함을 알 수 있으며, 애착하고 좋아하는 탐욕의 대상이 감각기관에 노출되면 감각기관은 이를 좋아하여 대상에 끌려 다닌다. 또한 본성을 놓치고 악한 심리와 말로써 남을 괴롭히며 업이 두터워지고 견고해져서 이에 벗어나기 힘들며 계율이 작동이 되지 않아서 물질에 대하여 싫어함이 없고 좋아하게 된다. 이러한 성격 유형에 맞는 수행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부정관이다.
2. ‘성문지’의 부정관의 위치
‘성문지’는 종성지에서 열반에 이르는 과정의 수행자 종류를 28종으로 설명한다. 그 다음으로 이러한 성격을 지닌 보특가라가 어떤 수행법을 취해야 하는가를 논증한다. 한역 유가사지론은 수행주체가 대상의 수행법을 만나는 것을 소연경사(所緣境事)라고 명명하고, 4가지 범주를 설정하여 포괄한다. 첫째는 편만소연경사(遍滿所緣境事)이며, 둘째는 정행소연경사(淨行所緣境事)이며, 셋째는 선교소연경사(善巧所緣境事)이며 넷째는 정혹소연경사(淨惑所緣境事)이다23).
편만소연경사는 유분별경사(有分別境事), 무분별경사(無分別境事), 사변제성(事邊際性), 소작성판(所作成辦)의 4가지 경계를 설명하는데, 이는 수행할 때 나타나는 마음의 현상을 단계별로 밝힌 것이다. 유분별경사는 수행할 때 나타나는 영상지의 단계를 설명하며, 무분별경사는 영상지가 사라진 선정상태의 수행현상을 설명하며, 사변제성은 진리와 계합된 상태를 설명하며, 소작성판은 수행의 완성 단계를 설명한다.
정행소연경사는 수행방법을 밝힌 부분이다. 유가사지론은 이 정행소연경사에서 5문 수행이라고 칭하면서 5정심관 수행법을 나열한다. 즉 부정(不淨), 자민(慈愍), 연기(緣起), 계차별(界差別), 아나파나염(阿那波那念)을 시설하는 것이다. 부정은 부정관, 자민은 자비관, 연기는 연기관, 계차별은 계차별관, 아나파나념은 수식관을 의미하는데, 이 다섯 수행법에 대한 유가사지론의 설명은 어떤 경론의 수행법 체계 보다 광대하고 세밀하다.
선교소연경사는 수행법이기보다는 수행자가 알아야할 불법(佛法)의 내용을 소개한 부분이다. 현상계의 이치를 교법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선교라고 명명하고, 주요 교법의 범주를 온(蘊), 계(界), 처(處), 연기(緣起), 처비처(處非處)의 체계로 구성한다. 정혹소연경사는 수행할 때 접하게 되는 선정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정혹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혹을 정화하는 소연경의 현상으로 선정의 과정을 배대하는 것이다. 번뇌의 혹을 깨끗하게 하는 정혹소연경사에서는 세간도와 출세간도로 나누어서 세간도의 정혹소연은 초정려로부처 비상비비상처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서는 하지(下地)의 추성(麤性)과 상지(上地)의 정성(靜性)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하고, 출세간의 정혹소연은 고·집·멸·도의 4성제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24).
유가사지론의 체계는 편만소연경사에서 수행의 현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다음으로 정행소연경사에서 수행의 방법을 제시하고, 선교소연경사에서 불교교리와의 관계를 밝히고, 마지막으로 정혹소연경사에서 번뇌를 제거하는 선정과 4성제를 관계성을 밝힌다. 이 중 부정관은 정행소연경사 내용에 포함되어 있으며, 5정심관의 첫 번째로 거론된다.
Ⅲ. 유가사지론의 부정관의 변형
1. 초기 부정관 수용과 후예부정관
부정관은 네 가지 소연경사25) 가운데에 정행소연경사의 5문 중 첫 번째 문에서 시설된다. 그러나 유가사지론의 부정관은 아함의 내신부정관에 해당하는 몸 내부 기관 관찰과 외신부정관에 해당하는 외부의 시신관찰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확대되고 체계화된 부정관을 증설한다. 부정관의 관찰 내용을 6가지로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6종 부정관에 대하여 유가사지론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무엇을 부정소연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간략히 설하면 여섯 가지 부정이 있으니, 첫째는 후예부정이며, 둘째는 고뇌부정이며, 셋째는 하열부정이며, 넷째는 관대부정이며, 다섯째는 번뇌부정이며, 여섯째는 속괴부정이다.
유가사지론은 초기불교의 부정관 중 내신부정관과 외신부정관을 후예부정관이라고 하고, 그 밖에 초기불교에서 거론하지 않는 나머지 고뇌, 하열, 관대, 번뇌, 속괴의 부정관을 새롭게 시설한다. 이는 부정관을 여러 가지 교법과의 관계에서 폭넓게 닦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인다. 6종 부정관의 후예부정관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함의 내신관찰과 외신관찰의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무엇을 후예부정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이 부정은 간략하게 두 가지 것에 의하니, 첫째는 안에 의하는 것이며, 둘째는 밖[外]에 의하는 것이다.
무엇을 안에 의한 후예부정이라고 하는가?
내신(內身)의 머리카락과 터럭, 손‧발톱, 이, 때, 살갗, 살, 해골, 힘줄과 맥, 심장, 쓸개와 간, 대장과 소장, 생장과 숙장, 위, 비장과 신장, 고름, 피, 열, 담, 지방, 골수, 뇌, 막, 콧물, 침, 눈물, 땀, 똥과 오줌의 이와 같은 등의 종류를 안에 의한 후예부정이라고 한다.26) 무엇을 밖에 의한 후예부정이라고 하는가?
혹은 청어, 혹은 다시 농란, 혹은 다시 변괴, 혹은 다시 방창, 혹은 다시 식담, 혹은 다시 붉게 변하거나 혹은 다시 흩어지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혹은 뼈나 이음새, 혹은 골쇄, 혹은 똥으로 만들어진 것, 혹은 오줌으로 만들어진 것, 혹은 침에 의한 것, 혹은 콧물에 의한 것, 혹은 피로 칠해진 것, 혹은 고름으로 칠해진 것, 혹은 대소변이 나오는 곳을 말한다. 이와 같은 등의 종류를 밖에 의한 후예부정이라고 한다.
위 인용문의 내신 후예부정관은 아함에 나타난 내신 부정관의 내용과 일치한다. 내신을 관찰하는 방법은 아함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공통적으로 몸 내부의 각각의 부위와 장기와 뼈와 살 등등을 구체적으로 관찰할 것을 기술한다27).
이러한 내신 부정관의 형식은 중아함경28)에서 기술되고 잡아함경29)에도 유사한 내용이 기술되며 맛지마니까야30)와 디가니까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초기경전에 나타난 내신관찰은 모두 몸 내부의 기관들과 장기들을 관찰하는 것을 부정관이라고 하고, 이때 부정의 의미는 몸의 부속물들을 깨끗하지 않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또한 유가사지론는 훗날 9상관으로 정형화된 시신관찰을 외신 후예부정관이라고 정의하는데, 아함은 초기적 형태의 외신 관찰을 기록한다. 중아함경에 나타난 외신부정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 죽은 뱀과 죽은 개와 죽은 사람이 어혈지고 부풀어 오르고 심한 악취가 나면서 문드러지고 더러운 것이 흘러내려서 목을 매이게 하면 수치심을 느끼고 매우 더럽다고 여긴다. 세존이시여. 나도 또한 이와 같아서 항상 이 몸을 악취가 나는 부정한 것이라고 관찰하고 마음으로 수치심을 품고 매우 더럽다고 여깁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몸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하나의 범행에 가볍게 여겨서 인간에 노닐게 됩니다31).
중아함경은 청어, 방창, 농난으로 외신 관찰의 모습을 기술하고 이를 본 수행자는 수치심을 느끼고 부정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이 모습들을 자신의 몸에 집중하는 신념처의 방법으로 연계한다. 증일아함경은 부정관이 욕심과 관계된 수행법임을 시사하면서 외신관찰을 기술하기도 한다32). 잡아함경과 증일아함경은 외신 부정관을 명명하지는 않지만 열반에 이르게 하는 10상 하나로 기술한다33).
이와 같이 초기불교의 부정관의 기본 패턴이 유가사지론에 이르면 6종 부정관 중에 외신의 후예부정관으로 수용되면서 부정은 탐행(貪行)의 소연(所緣)을 청정하게 하는 중요한 수행법이 된다. 유가사지론은 탐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고, 첫째는 내신의 욕욕34)과 욕탐이며, 둘째는 외신의 음욕과 음탐이며, 셋째는 경욕과 경탐이며, 넷째는 색욕과 색탐이며, 다섯째는 살가야욕과 살가야탐이라고 나열하면서 이를 5탐이라고 한다35). 그리고 곧바로 이 다섯 가지의 욕탐을 끊어 없애고 제거해버리며 현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여섯 가지의 부정소연을 건립한다고 한다36). 후예부정관은 이 중 내신과 외신의 욕심과 음욕을 청정하게 하는 것으로, 안(內)에 의한 후예부정의 소연에 의해서 내신의 욕욕과 욕탐에서 마음을 청정하게 하며, 밖(外)에 의한 후예부정의 소연에 의해서 외신의 음욕와 음탐에서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37).
부정관은 아비달마와 대승에서 그 전통을 달리 하는데, 대승의 부정관은 내신 부정관을 일반적인 부정관이라고 채택하고, 아비달마는 초기불교의 시신관찰 유형을 부정관이라고 한다. 특히 아비달마순정리론은 내신부정관은 근기가 뛰어난 이근의 수행자가 하는 수행이며 외신부정관은 둔근의 수행자가 하는 수행이라고 설명한다38). 아비달마의 부정관은 유가사지론의 외신 부정관의 내용이며, 후예부정관의 외신관찰에 해당한다. 부정관은 붓다 당대에 신념처의 수행법으로 독보적이었지만 자살소동으로 수식관 수행법을 설정하게 된 계기가 된다. 부정관이 몸을 내외로 철저히 관찰하는 수행법이다 보니, 그 명맥은 아비달마와 대승의 핵심적 수행법으로 자리매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대승은 내신부정관을 부정관의 전통으로 삼았고, 아비달마는 외신부정관을 부정관의 전통으로 중시했다.
유가사의 실천수행에 의거해 수행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유가사지론은 교법을 체계화하면서 그 안에 부정관의 위치를 선명히 하고, 부정관이 확대되어지는 과정 속에 외신부정관을 5탐과 함께 설명한다.
유가사지론은 외신관찰을 음욕과 음탐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음욕과 음탐을 제거하기 위하여 내신 부정관 보다 많은 설명을 참가한다. 음과 상응하는 탐에는 다시 네 가지가 있다고 하면서, 첫째는 현색탐이며, 둘째는 형색탐이며, 셋째는 묘촉탐이며, 넷째는 승사탐39)이라고 하며, 시신의 각각의 모습들은 이 네 가지 탐을 제거한다고 한다. 죽은 시체가 시퍼렇게 변하는 청어, 문드러지는 농란, 변화하여 무너지는 변괴, 고름이 터져나오는 방창, 시신을 동물과 벌레가 파먹는 식담의 경우는 현색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시체들이 살갗, 살, 피, 힘줄, 맥이 얽혀서 쌓인 변적의 상태는 형색탐을 대치하여 청정하게 한다고 하고, 죽은 시신의 뼈와 그 이음새와 골쇄의 모습은 묘촉탐에 대한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죽은 시신의 뼈들이 가루가 되어 진토(塵土)에 섞이는 산괴의 모습을 작의사유하면 승사탐(承事貪)에 대한 마음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40).
이러한 주장들은 아비달마의 논서들도41) 기술하고 있어서 유식의 많은 부분의 수행이론은 아비달마와 궤를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색탐은 드러난 색깔에 대한 탐욕을 의미하고, 형색탐은 형태에 대한 탐욕을 의미하며, 묘촉탐은 대상에 닿았을 때의 탐욕을 의미하고, 승사탐은 대접받고 인정받고 싶은 탐욕을 의미하지만, 아비달마의 논서는 4탐과 시신의 변화하는 모습의 관계를 기술한다. 외신의 시신의 변화하는 모습에 의해서 4탐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데,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은 아비달마순정리론, 아비달마구사론, 유가사지론의 설과는 다른 욕탐과 경계탐을 설하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계경의 설에서 부정관을 닦으면 능히 욕탐을 끊을 수 있으며 사무량을 닦아서 역시 욕탐을 끊을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답한다. 부정관을 닦으면 음욕을 대치하고 사무량을 닦으면 경계탐을 대치한다. 다시 부정관을 닦으면 현색탐을 대치하며 사무량을 닦으면 형색탐을 대치한다. 다시 부정관을 세촉탐을 대치하고, 사무량을 닦으면 용의탐을 대치한다. 다시 부정관을 닦으면 형모탐을 대치하고 사무량을 닦으면 유정탐을 대치한다. 이것이 차별이다42).
위의 사무량(捨無量)은 자·비·희·사의 마지막 단계의 사무량이 아니라 4무량심을 의미한다. 위를 살펴보면 부정관은 4탐 중에 현색탐, 세촉탐, 형모탐을 대치하며 사무량심은 형색탐, 용의탐, 유정탐을 대치한다고 한다. 형모탐과 용의탐은 모두 형태와 모습과 위의에 관한 욕심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정관과 사무량은 이를 끊을 수 있는 수행법인 점에서 동일하다. 다만 외신 부정관은 음욕 대치에 탁월하고 사무량은 경계에서 드러난 욕심을 끊는데 탁월함을 강조한 것이다.
유가사지론의 외신관찰은 음욕에 해당하는 욕심을 끊어내는 것이지만, 외부시신의 변화하는 다양한 모습을 관견(觀見)했을 때, 마음은 그에 상응하는 현색탐, 형색탐, 묘촉탐, 승사탐 등을 보게 되어 윤회하면서 담아놓은 아뢰야식 내의 근본 4탐을 제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유가사지론 뿐만 아니라 아비달마의 논서도 언급하고 있어서 유가사의 전통과 아비달마의 법체계는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2. 6종 부정관과 부정관의 변형
유가사지론의 6종 부정관은 초기불교의 부정관을 후예부정관으로 정리하고 있다. 나머지 5종 부정관은 초기불교에서 거론하지 않은 부정관 형태인데, 유가사지론은 부정관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한다. 유가사지론은 하나의 수행법일지라도 단순하게 시설하지 않는다. 부정관도 예외가 아니다. 유가사지론의 부정관은 다양한 교문, 시각, 관점, 교리와 결합되어 설명된다. 유가사지론의 나머지 부정관을 살펴보자
무엇을 고뇌부정이라고 하는가?
고수의 감촉을 닿아서 생겨나게 되는 몸과 마음에 불평등의 느낌과 느낌이 포함된 것[受所攝]43)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고뇌부정이라고 한다.
무엇을 하열부정이라고 하는가?
가장 하열한 현상과 가장 하열한 계(界)인 소위 욕계를 의미하며 이것을 제외한 다시 극히 하열하고 극히 열등하고 극도로 비예한 그 밖의 계는 얻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하열부정이라고 한다.
무엇을 관대부정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하열한 청정의 대상을 그 나머지의 수승한 청정의 대상에다 관찰하여 비교하여 바로 부정과 흡사하다고 여기는 것이며, 무색의 수승한 청정의 대상에다 관찰하여 비교하면서 색계의 제법은 바로 부정과 흡사한 것이며, 살가야적멸(薩迦耶寂滅)의 열반에 관찰하여 비교하면서 내지 유정(有頂)도 모두 부정과 흡사한 것과 같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종류의 일체를 관대부정이라고 한다.
무엇을 번뇌부정이라고 하는가?
3계(界)의 모든 일체의 계박과 수면과 수번뇌의 번뇌[纏]의 일체를 번뇌부정이라고 한다.
무엇을 속괴부정이라고 하는가?
5취온은 늘 한결같지 않으며, 가히 지키고 믿을 수 없는 변화하고 무너지는 법칙성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속괴부정이라고 한다45).
위의 5종 부정관은 초기불교의 내신부정관과 외신부정관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고뇌부정은 고수·낙수·불고불낙수의 느낌 중 고수의 느낌을 부정(不淨)하게 보는 것이다. 감각할 때 일어나는 괴로운 느낌을 부정하게 보는 것이다. 후예부정관이 몸의 장기 등 신체 내부 기관을 관찰하거나 외부의 시신의 변화과정을 부정하게 보면서 관찰하는 것이라면 고뇌부정은 감각기관과 대상이 접촉하였을 때 일어나는 느낌을 부정하게 보는 것이다. 느낌은 접촉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외부 경계를 마주할 때 일어나는 의식의 부정함을 강조한 것이다.
하열부정관은 욕계·색계·무색계의 3계 중 욕계가 가장 하열한 세계이기 때문에 욕계에서 성취되는 모든 것을 부정하게 보는 것이다. 인간은 욕심세계의 중생이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하다고 보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은 부정관의 원형으로서 후예부정관을 내외로 분리하여 설명한 후, 대상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은 욕계의 느낌이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유가사지론은 고뇌부정의 소연과 하열부정의 소연을 통해 각각의 경계에 상응하는 탐욕과 전반적인 탐욕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45). 고뇌부정관은 욕계에 존재하는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탐욕의 느낌을 제거하는 것이며, 하열부정관은 욕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관대부정관은 욕계의 욕심은 색계의 욕심에 비하면 낮은 단계의 욕심이기 때문에 부정하기 쉽고, 색계의 욕심은 무색계와 비교하여 관찰하면 부정하기 쉽다는 것이다. 윗 단계의 세계로 낮은 단계의 욕심을 부정하게 본다는 것이다. 관대부정관은 3계의 욕심을 상위의 단계를 설정하여 그 보다 하위 단계를 부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욕계의 욕심은 색계의 단계로서 퇴치하고, 무색계는 열반계로 극복한다는 취지이다.
관대부정관은 살가야견을 적멸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살가야견 소멸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신견의 극복을 말한다. 초기불교 이래 살가야견은 3결(結)의 하나로 성자 단계에 이르기 위하여 반드시 소멸해야 할 번뇌로 여겨졌다. 대반야바라밀다경은 살가야견과 성위와의 관계를 잘 피력하고 있다.
또한 여실지, 이것은 공해탈문으로써 5근을 세우고, 5근으로써 곧바로 선정을 일으키며, 무간의 선정은 해탈지견을 일으키며, 해탈지견은 영원히 3결을 끊어서 예류과를 얻는데, 살가야견과 계금취견과 의심이 바로 3결이다. 다시 앞의 것에 의해서 수도를 얻고, 욕탐과 진에심을 엷게 하여, 일래과를 얻는다. 앞의 종류의 수도에서 욕탐과 진에심을 다 소멸하여 불환과를 얻는다. 다시 뛰어난 수도의 (수행으로 인하여) 다섯 가지 윗부분에 포진한 번뇌의 결을 다 소멸하여 아라한을 얻는데, 색탐, 무색탐, 무명, 만, 도거가 바로 윗부분에 포진한 번뇌의 결이다46).
대반야바라밀다경을 참조할 때 살가야견과 계금취견과 의심의 3결의 번뇌는 예류과를 얻기 위해 끊어야 할 번뇌이다. 이는 견도를 성취한 단계라고 할 수 있으나, 이것만으로 수행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도위 과정에서 욕계의 탐욕과 진에심을 닦아서 엷게 한 다음에 성자의 단계인 일래과를 얻고, 그 다음에 오상분결(五上分結)에 해당하는 색탐, 무색탐, 무명, 아만, 도거를 끊어서 아라한을 얻는다. 이를 볼 때 관대부정관에서 끊어내야 할 살가야견은 견도에 들어가기 위한 욕계의 대표적 번뇌에 해당한다. 유가사지론은 욕계의 번뇌를 상위 단계의 마음으로 제압하고 제거할 수 있도록 관대(觀待), 즉 비교의 관점에서 시설한다. 유가사지론은 관대부정의 소연에 의해서 색계에 상응하여 욕(欲)과 탐의 마음으로부터 청정을 얻게끔47) 할 수 있다고 하여, 욕계의 욕탐은 색계의 마음을 설정함으로써 내려놓을 수 있다고 한다.
번뇌부정관은 3계의 일체 결박과 수면과 수번뇌의 번뇌[纏]를 끊는 것이라고 유가사지론은 정의한다. 모든 번뇌를 부정하는 것을 번뇌부정관이라는 범주에 넣은 것이다. 결박은 살가야견과 계금취견과 의심에서 일어나는 번뇌작용을 의미하며, 수면은 심층내면에 잠재체로 있는 번뇌를 의미하며, 수번뇌는 근본번뇌에서 파생된 분한(忿恨)과 같은 번뇌를 의미한다. 번뇌부정관의 특징은 3계의 모든 번뇌를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부정관은 욕계에 한정되는 낮은 단계의 수행법이 아니게 된다.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유가사지론은 순수한 부정관은 후예부정관이며 나머지 부정관은 정행소연이라고 부연설명을 이어간다.
속괴부정관은 5온(蘊)의 무상성을 관찰하는 것으로, 오온은 변화의 법칙성을 갖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유가사지론는 소연경사 중 정행소연경사 부분에서 5정심관의 수행법을 기술하지만, 선교소연경사에서 온·처·계 등의 교법과 연결해서 관찰할 것을 기술한다. 속괴부정관은 선교소연경사의 온과 연결되는데, 이것은 교법과의 유기적 관점을 중시하는 유가사지론의 특징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번뇌와 5온의 무상성을 관찰함으로써 욕계로부터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까지 유신견의 욕심과 탐욕을 끊어내서 마음의 청정을 얻을 수 있다48).
유정천은 색계의 제4천인 색구경천을 의미하기도 하고, 4무색정의 마지막 천인 무색계의 비상비비상처를 의미하기도 한다. 유가사지론의 입장은 번뇌부정관에서 3계의 번뇌를 모두 끊어낸다고 하기 때문에 비상비비상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살가야견을 언급하고 있어서 색계의 색구경천을 의미하기도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부정관으로 비상비비상처의 무색계의 번뇌까지 다 끊어낼 수 있다고 한다면, 초기불교 부정관의 위치는 현격하게 상승한다. 욕계를 뛰어넘어 색계와 무색계의 번뇌까지 퇴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가사지론은 후예부정관만을 부정관이라고 정형화할 수 있으며, 나머지 5종 부정관은 탐행을 깨끗하게 하는 정행소연이라고 분리하여 설명한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를 탐행 정행 소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것은 탐욕을 깨끗하게 하는 수행에 의거하여 일체 치유에 포함되는 종합적인 부정의 소연이라고 설한다. 지금 이 뜻 속의 본래의 의미는 오직 후예부정만을 취한 것이고 그 밖의 부정관은 정행의 소연이다49).
위 문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부정관의 고유의 범주는 후예부정관에 해당하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5종 부정관은 정행소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은 전통의 부정관을 피력하면서도 부정관이 점차 윗 단계 수행으로 진전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정관의 형태를 선보이면서도 전통적인 부정관의 수용과 새로이 변형된 부정관의 관계를 정행소연이라는 단어로 마무리한다.
Ⅲ. 나아가는 말
이상으로 유가사지론의 부정관을 살펴보았다. 일반적으로 유가사지론은 여러 단계로 수행자, 수행법, 수행과정을 설정하고, 각 단계에 입각해서 교법을 풀어가는 특징이 있는데, 「성문지」의 수행법 시설도 예외가 아니다. 먼저 종성지에서 수행의 주체를 보특가라 중생의 다양한 면모로 밝힌다. 보특가라 중생은 수많은 윤회도상에서 업력의 마음을 굴리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여리작의를 할 수 있는 불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윤회도상에 있는 중생은 다양하기 때문에 28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28종의 보특가라 중에 탐행이 치성한 중생은 그에 적당한 수행대상, 즉 소연(所緣)을 만나야 한다. 아비달마와 대승에 이르면 초기불교에서 간간히 언급한 중생 근기에 적합한 수행법을 적극 제시되는데, 그것이 바로 5정심관이다. 탐욕에 부정관, 진에에 자비관, 우치에 연기관, 아만에 계차별관, 산란하고 심사의 생각이 많은 이에게 아나파나사띠의 수식관이 권장된다. 경론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위의 패턴은 일반적이다.
유가사지론도 위의 기본패턴을 따르고 있는데, 탐욕에 적합한 부정관의 경우는 초기불교 부정관의 양상을 수용하면서도, 또 다른 형태의 부정관법을 소개하는 특징을 보인다. 유가사지론 부정관의 특징은 6종 부정관으로 확대되어 설명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부정관인 후예부정관은 초기불교 부정관 형태를 그대로 수용한 측면이 강하다. 후예부정관 중 내신(內身) 부정관은 초기불교와 대승의 몸 내부의 기관들을 관찰하는 부정관의 일반적 형태이다. 후예부정관 중 외신(外身) 부정관은 외부에 놓인 시체의 변화상을 통하여 자신의 심리를 관찰하는 것으로, 초기불교에서도 일부 언급되지만, 특히 아비달마 전통의 부정관 이기도 하다.
유가사지론에 나오는 후예부정관 외의 나머지 5종 부정관은 욕계 단계의 번뇌를 끊는 초기 불교의 부정관이나 몸 관찰 수준의 수식관을 뛰어넘는 관법으로 등장한다. 이런 부정관의 발전은 불교의 교리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이것을 대치하기 위한 다양한 교법이 결합한 것을 보여준다.
초기불교보다 격상된 부정관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 유가사지론은 후예부정관만이 초기불교의 전통적인 부정관이고, 나머지 5종의 부정관은 정행소연(淨行所緣)에 속한다고 기술한다. 유가사지론의 6종 부정관은 어떤 경론보다도 부정관의 내용을 방대하고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마음을 닦을수록 더 심층내면이 드러나면서 외부 경계도 끝없이 확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점을 감안하여 유가사지론은 기존 교설을 더욱 더 유기적으로 체계화시켜 방대한 교설 체계를 이루어냈고, 이에 따라 부정관도 기존의 교설보다 더욱 복잡한 구조와 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정관은 탐행과 음행이 치성한 보특가라의 수행법으로, 정행소연경사의 첫 번째 단추에 해당한다. 내부의 몸 관찰을 통하여 몸의 상태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이어 외부의 시신의 변화상을 통하여 4탐, 즉 현색탐, 형색탐, 묘촉탐, 승사탐을 제거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 후예부정관은 기본적인 탐욕과 음욕을 퇴치하는 수행법이지만, 탐욕과 음욕의 심층내부로 들어가다 보면 이와 깊이 관련된 느낌, 상위개념의 번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가사지론은 심리내면의 업과 번뇌를 치유하기 위하여 후예부정관 이외의 여러 종류와 단계로 부정관을 시설한 것이다.
국문초록
부정관은 붓다 최초기의 수행법이다. 붓다는 그의 제자들에게 열반에 이르는 방법으로 부정관을 닦을 것을 권장하였지만 몸의 부정물을 경험한 비구들은 몸에서 나타난 수행현상을 혐오하여 자살한다. 붓다는 부정관법 대신 새로운 수행법 아나파나사띠 즉 수식관을 적극 제시한다. 그러나 부정관 수행법은 아비달마와 대승에 전승되었으며, 유가사지론에 이르면 6종 부정관으로 변형된다. 초기경전에 나타난 부정관은 두 형태를 보이는데, 내신(內身)의 몸 기관과 장기를 관찰하는 것이고, 외신(外身)의 죽은 시신의 여러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전자는 대승에서 전승하였으며, 후자는 아비달마에서 전승하였다. 유가사지론은 내신과 외신 관찰의 부정관을 후예부정관(朽穢不淨觀)이라고 정리하고 그 밖에 고뇌, 하열(下劣), 관대(觀待), 번뇌, 속괴(速壞) 부정관을 시설한다. 후예부정관은 초기불교의 내외부정관을 수용한 것이며, 나머지 부정관은 부정관의 변형으로서 심리의 유기적 측면을 고려한 부정관이라고 할 수 있다.